미술산책-마네와 빅토린

입력 1999-11-18 14:03:00

19세기 누드모델, 그것도 에두아르 마네(1832~1883)처럼 발표하는 작품마다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화가의 모델이 갖춰야 했을 덕목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용모? 인내심?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 아니었을까?

세간의 어떤 혹평에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는 화가뿐 아니라 모델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19세기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뻔뻔스러움'이라 불렀겠지만.

생동감 넘치면서도 절제된 필법으로 실물의 이미지를 화폭에 담아 인상주의에로의 길을 연 거장 마네의 모델 빅토린 뫼랑은 그런 '용기' 덕분에 회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누드모델이 됐다.

그녀가 등장한 작품 중 널리 알려진 것은 '풀밭에서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 두 명의 정장차림 남자와 벌거벗은 여자가 천연덕스럽게 풀밭에 앉아 있는 '목욕'(후에 '풀밭에서의 점심식사'로 제목이 바뀌었다)은 1863년 발표되자마자 선정성 시비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 소동은 2년 뒤 발표된 '올랭피아' 스캔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전라의 여성이 목걸이·팔찌만 걸친채 비스듬히 누워있는 '올랭피아'는 공개당시 천장에 붙인채 전시됐다고 한다. 작품의 음란함에 분노한 관람객들이 침을 뱉고 지팡이로 그림을 찢으려고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평론가들도 가혹했다. '그녀는 음란하고 멍청하다…모든 수치심을 태연하고도 솔직하게 무시하는 여인의 부패한 자태… 이것은 원초적 본능으로 얼룩진 이 사회의 음부를 생각하게 한다'는 논평은 그래도 점잖은 편. '마네는 노란 뱃가죽의 창녀를 그렸다'는 조소에 찬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평가는 두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두 작품의 구도나 노출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 작품들 중에는 더 심한 것도 많았다. 차이점이라면 다른 화가들은 신화속 여신을 그렸지만 마네는 빅토린이라는 실존 인물을 그렸다는 것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사람들은 작품 속 여인의 벗은 몸에만 호기심어린 눈길을 주었을 뿐 작품의 진면목을 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두 작품이 걸작으로 평가받는 것은 심한 노출때문이 아니다. '풀밭에서의 점심식사'는 대담하면서도 경쾌한 전경, 빛을 듬뿍 받은 피부의 표현 등으로 인상주의의 출발을 알린 작품으로 자리매김됐고 '올랭피아' 역시 화가가 본 느낌을 빛과 어둠의 독특한 조형어법으로 표현해냈기에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를 앞둔 요즘도 외설시비가 이는 것을 보면 '음란성'이라는 나무에 집착해 '작품성'의 숲을 보지 못하는 실수는 19세기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

결국 마네와 그의 성실한 모델 빅토린은 동시대인들의 비난에 정면으로 맞선 끝에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거장으로, 회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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