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움직임과 정신치료

입력 1999-11-11 14:04:00

ㅎ씨는 늘 벽으로만 붙어서 걷는다. 무용/동작치료실로 들어와서도 거의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과 굳은 어깨와 양팔을 몸통에 딱 붙이고 공간 한쪽에 고개숙여 앉아 있다. "안녕하세요, 하씨?"하고 밝고 환한 목소리로 인사해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ㄱ씨는 창백한 얼굴로 오늘도 누군가가 자신의 밥 속에 독약을 넣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움직임치료 과정에서도 늘 죽어서 쓰러지는 움직임을 한다.

매주 화요일 오후, 국립 서울정신병원 무용치료실에서는 1기에 15명 정도의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무용/동작치료를 통해서 약물치료로서 해결할 수 없는 음성 증상들, 이를테면 정서적인 감정교류나 대인관계, 자기표현 등의 치료를 12주 프로그램으로 받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악몽과 내부에서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감정들, 환상, 명령하는 목소리, 불안 등 정신적으로 얽어매고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힘이 없는 연약한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최근들어 무용/동작치료, 음악치료, 사이코 드라마와 같은 예술치료가 정신병원, 문제청소년, 자폐센터,상담센터, 특수교육기관 등에서 심리치료의 한 방법으로 접근되고 있다. 정신분석가 위니코트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는 공간을 잠재공간이라 하고 모든 치료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했다. 무용/동작치료(dance therapy)는 인간의 모든 움직임은 결국 개개인의 내적 언어이며 그 속에 상징적 의미나 감정이 내포돼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움직임 속에서 자신을 탐색하고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게 하고 표현하게 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돕는데 목적이 있다.

즉 환상이나 분노가 자신을 사로잡아 끌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하는 것에서 자신의 환상을 현실에서 표현하게 하고 분노를 표출케 함으로써 무의식의 억눌림에서 벗어나게하며, 감정을 정화시키도록 돕는다. 자신에 대한 자각과 표현능력의 개발은 자신만의 창조성과 자발성을 키우는 것이고 그 자체로 심리적 치유효과가 있는 것이다. 유분순.한국무용치료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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