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가대의 가을은 짙은 커피향과 낮은 바이올린 소리로 잔잔히 퍼지기도 하고, 그리고 그물 속의 고기비늘 만큼이나 퍼떡이는 반짝임이 되어 깊게 늘어선 은행나뭇길에 요동치기도 한다. 아름답다 못해 강렬한 순도의 그 노란 잎들은 나비처럼 하늘을 날고 깃발처럼 외치곤 한다. 때맞춘 한차례 바람에 소나기가 된 나뭇잎을 맞으며 걸어 들어오는 청명한 가을 오후엔 차 한잔과 따뜻한 담소가 그립다. 또한 가을 편지 한 장도.
영어 회화 수업은 마음속의 진솔함과 억눌린 욕구가 어눌한 표현을 통해서도 잘도 생생히 살아 나옴을 보여준다. '이 가을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표현과 강도만 다를 뿐 사랑에 빠지고 싶고, 편지를 받고 싶다는 공약수를 보여준다. 생각지 못한 이에게서 혹은 사랑하는 친구에게서 날아든 편지에는 나를 가치로운 존재로 만드는 마법이 있다는 것이다. 잊혀지지 않은 누군가의 대상이 되어서일까!
그러한 작은 소망에 동참한 자신이 낯설지 않음을 감사히 여기며, 이 가을 나는 자신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매일 편지를 받기로 한 것이다. 20년 전 때론 10년전의 친구들을 편지로 만나보는 것이다. 먼지 쌓인 상자 안에서 추억용으로 쓰기엔 너무 아까운 그 편지들을 깨워 선물로 포장하고 기쁨을 전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운전사를 겸하는 매니저가 아니고, 불혹이 무감동인양 무덤덤한 일상에 감상을 묻은 아줌마가 아니라, 승진에 안달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진 중견 직장인이 아니라, 첫 아이를 안고 환희와 두려움에 떨던 그녀, 다소곳하고 수줍은 새댁이었던 그녀, 그러면서 상처입고 격정으로 울먹이던 그녀, 즉 여성으로서의 그녀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감격 잘하는 여린 소녀였던 그녀를 편지 속에서 발견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그들에게 나의 기쁨을 나누어주려고 한다.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전의 빛바랜 사진을 발견하고 그 날의 인상과 지난 시절에 대한 아쉬움에 가슴 아련한 적이 있질 않은가! 책갈피 속의 단풍잎에서도 반가움과 감동이 묻어 나오는데 오래전 자신이 부친 편지를 다시 받아보는 마음은 어떠할까!
반짝이는 은행잎들이 하늘과 땅에 노오란 다리를 놓는 늦가을 오후, 오래된 편지상자 안에서 꺼내온 여고동창생의 편지를 컴퓨터로 옮긴다. 해맑은 그녀 얼굴이 내내 아른거린다.
(금 동 지 효가대 실용영어 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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