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19)-도심 가로에서 보는 대구건축

입력 1999-11-09 14:00:00

건축물이 시대에 따라, 그리고 지어지는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양식으로 분류되고 있음은 시간과 장소가 건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은 건축물로써 어느 지역, 어느 시점의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대구는 옛 성곽의 흔적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중심으로 동심원상의 성장을 거듭하여 왔다. 동성로·서성로·남성로·북성로 등 구도심 일주가로와 그 내부가 그것인데, 이 가로들은 선조때 축성되어 1906년 일인거류민회의 요청에 따라 철거된 대구읍성의 성벽의 흔적이고 그 내부는 이들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이 가로들과 더불어 성벽 안쪽으로 동문과 서문을 연결하는 동서 축의 가로(경상감영공원 앞길), 남문과 북문으로 연결되는 남북 축의 가로(종로)는 현재 각각 독자적 특성을 지닌 상가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가로들은, 개발에 의해 넓혀진 서성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슷한 가로폭을 지니고 있어 과거 성벽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그리고 대표적 중심상업지역으로 이색지대가 된 동성로를 제외하고는 저마다 비슷한 높이와 스케일, 그리고 디테일을 지닌 건물들이 마주 보면서 오랜 시간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가로들로 둘러싸여 있는 지구내에는 자연발생적인 골목과 함께 대지의 규모가 작고 지적분할 또한 무질서한 주택들이 남아있어, 이웃하는 대로에서의 경관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구가로의 내부와 외부의 모습들은 그 기능 뿐만 아니라 가로망과 건축양식,경관 등의 차이로 도시의 이중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은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볼 수 있는데 중앙로를 축으로 하는 동서의 차이, 대동·대서로를 축으로 하는 남북의 차이가 그러하다. 특히 중앙로를 축으로 양분되는 한일로의 동쪽과 서쪽의 경관에서, 동쪽은 비교적 스카이라인이 낮고 균등한 반면 서쪽은 비교적 건물의 층수도 높고 스카이라인도 불규칙하며 번잡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동편 한일로를 따라 과거에(현재에도) 학교·관공서·대학병원 등의 공공건물과 공인(公人)들의 관사들이 밀집하여 있었던 까닭으로 보여지고, 서편도로는 대구의 중심부를 서문시장을 비롯한 대신동 상권과 연결하는 통로로서 업무·상업시설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중심도로를 따라 고층타운이 형성되면서 기복이 심해져 가고 있는 대로변 스카이라인과 늘어나는 교통량으로 인해 복잡해지고 있는 가로의 모습은, 기존의 대구에 대한 인상을 변화시켜 가고 있다. 특히 도시 외곽에 집중적으로 건설되고 있는 고층집합주거단지는 도시·농촌 할 것없이 전국적으로 공통된 유형의 가로경관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현대화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하겠고 지하철시대의 시작과 함께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겠으나, 대구의 이미지가 여타 도시들과 별다를 바 없이 만들어져 나가는 과정에 있음을 실감케 하면서 지역적 특성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해준다.

도시가 형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장소의 성격을 보여주는 가로들과 그 내부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는 부분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구는 무척 다행스러운 도시이다. 개발에서 뒤떨어진 구시가지의 가로들과 그 내부, 비교적 오래된 한일로 그리고 지하철 개통과 함께 새로이 단장되어 나가고 있는 중앙로는 대구민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소중한 부분들이기도 하다. 이들 가로들과 골목들도 언젠가는 지금과는 또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나갈 부분이긴 하겠으나, 이 두 부분들이 지닌 사회적·시각적 환경을 유지할 수 있게 하여 그 지역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유지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개별성을 지니는 건축물들이 모여 만드는 가로에서 지역의 특성을 공감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그 중요성이 감추어져 버린다는 것은,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도 모르는 도시의 미래상에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가져다줄지도 모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동차가 없는 구도심의 내부, 지역에 따른 건물의 높이·크기·색상·조경 등 공감할만한 요소들의 발견, 그래서 걸으면서 대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남아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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