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에 무너진 한국경제 압축성장 주역

입력 1999-11-02 15:45:00

섬유수출로 기반 자동차·건설 등 진출 '대우신화' 창조

'한국경제의 압축 성장을 이끌어온 경영인', '하루를 25시간으로 사는 경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장사꾼이라는 비난도 감수한 경영인'

온갖 찬사와 함께 때로는 질시와 비난속에 갖가지 수식어로 불리며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김우중(金宇中) 대우 회장이 1일 대우사태의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교육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회장이 대우의 경영에서 손을 뗌으로써 그는 이제 어린 시절 집안과 동생들을 보살피기 위해 신문배달과 열무, 냉차장사를 했고 학생시절에는 차비를 아낀 돈으로 책을 사 공부를 했던 한때의 '화려한 추억'을 지닌 평범한 한 노년의 신사로 돌아가게 됐다.

그러나 무역회사인 한성실업을 퇴사하고 지난 67년 열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대우실업을 창업한 그의 행적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섬유수출로 기반을 잡고 뒤이은 한국기계, 옥포조선소 등의 인수와 자동차, 전자, 건설, 분야로 진출하면서 그가 보여준 경영은 '대우신화'라는 명칭에 손색이 없었다.

2세에게 사업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철학은 각종 편법, 탈법으로 2세증여를 해온 다른 그룹들에 비해 김 회장을 높이 평가받게 했다.

창업이후 승승 장구하던 그에게도 큰 시련은 몇차례 있었다.

89년 대우조선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78년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를 인수, 설립한 대우조선은 80년대 말 전 세계 조선산업의 불경기와 격렬한 노사분규로 파산위기에 처했으나 김 회장은 옥포에서 2년간 상주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켰다.

91년 대우자동차가 GM과 결별하자 그는 다시 부평행을 선언해 17평 아파트에서 숙식하면서 자동차 살리기에 매달렸다. 자체 개발 모델이 없던 대우자동차로서는 큰위기의 순간이었다.

부평 상주 1년6개월만에 대우자동차는 에스페로 등 자체 모델 4개종을 시장에 내놓았다. 기아자동차를 제치고 내수시장에서 2위 업체로 올라섰고 흑자도 내는 회사가 됐다.

그런 그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높은 파고는 결국 넘지 못했다. 지난93년 남보다 먼저 세계경영을 선언, 루마니아,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등 동구권과 구소련지역에 진출하는 한편 지난해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는 등 확대경영 전략을 폈으나 IMF 관리체제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부닥쳤던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무역흑자 500억달러론을 내세우며 수출 지상주의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외상수출 채권이 많이 발생한 것도 오늘의 '한(恨)'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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