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을 떠났다가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
10월!
가을이다. 참으로 좋은 계절…….아니, 내겐 아직 겨울이다. 1998년 겨울….
내 마음에 길게 늘어진 고드름으로 인해 나는 아직도 맞이하지 못한 1999년의 봄과 여름과 10월을 기다리고 있다.
"꼭 가야된다. 꼭 보낼기다…"
수능을 치고 난 작년 11월… 그 마지막 주에 내게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다.
"안가요…아니, 못가요! 차라리 집에서 농사일이나 돕지… 아빠, 엄마 등골 빠지게 하는 그런 일…나 안해!"
친구들은 자신들이 가고 싶어했던, 또는 가기 싫어도 성적에 맞춰 가야하는 대학이란 관문에 원서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내게는 무엇보다도 돈이 급했다. 언제 또다시 쓰러질지 모르는 어머니, 점점 약해지는 아버지, 중학교를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했던 신경쇠약의 여동생… 그들을 위해 난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원서를 쓰는 것 보단, 원서쓰는데 쓰이는 돈이 더 아까울 정도로…나는…초조했다"유미야…우리딸…엄마소원 좀 풀어다오. 우리딸, 대학이라는 그런 문 앞에라도 보낼 수 있게 해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눈물에 젖어 팅 부어버린 눈으로… 내손을 잡고 말씀하시던 어머니…
그 모습…
"언니야…언니라도 내 대신해서 소원 좀 풀어드리라. 언니야…"
유난히도 순하고, 재주도 많아 자랑거리가 되었던 내동생… 그 간절함…그 모든 것이 나를 이곳에 보냈다.
전문대지만, 오히려 시간이 많이 남아 난 또다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고 지금은… 야간으로 옮겨 학교측의 배려로 근로장학생으로 일할 수 있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삶의 무게로만 느껴졌다. 철없던 시절의 반항까지도 지금 생각하면… 죄스러움으로 부모님을 뵐 수도 없을 정도니까…
다른 학생들이 공부로 인해 하루를 마감할 때, 나는 강의로 인해 하루를 시작했고, 다른 이들이 행복으로 하여금 웃을 수 있을 때 나는… 원망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웬 비야? 날씨도 참 괴상하네"
사무실 언니의 짜증섞인 목소리로 나는 비가 내리는 교정을 볼 수 있었다.
'참 오랜만에 내리는 비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유미야, 저기"언니가 가르치는 곳… 그곳엔… 비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하지만…그분은… 내 아버지셨다.
여름내 뙤약볕에서 고추를 따느라 더 이상 검어질 수 없는 얼굴을 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는… 5개월만에 뵙는 나의 아버지셨다.
"아…빠"차마 웃음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웃으려고 하면 얼굴근육에 경련이 일려고 했으니까…
"웬일이세요? 무슨…"
그냥…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 말이 전부였다.
"니 얼굴 본지도 하도 오래돼서 와 봤데이…얼굴이 와 이모양이고… 기숙사 있으니까 밥도 제대로 못먹쟤? 니도 잘사는 집에 태어나가 좋은 부모 만났으면 이고생 안할낀데… 나도 열심히 하는데 안되는 거를 우짜겠노? 미안테이… 이제 곧 겨울날씨지 싶어서 옷좀 갖고 왔다"
내앞에서 처음 보이셨다. 태어나 처음 그때서야 난 알았다,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는 구나 하는 것을…
"아니에요. 오히려… 사회경험도 일찍하고…일도 배우고 더 좋아요…집은…괜찮죠?"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아버지를 배웅해 드렸다. 그렇게 넓기만 하던 아버지의 어깨위로 아려한 외로움이 묻어났다.
점심시간에 웬일로 육개장이 나왔다. 한숟갈 뜨려고 하는데
'아버지 드시게 하고 갈 껄… 오토바이 타고 오느라 힘드셨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역시 생각이 짧은…아이였다.
너무나 일찍 모든걸 알아버린탓일까?
요즘 내 얼굴엔 미소와 웃음이 사라졌다. 이번해 마지막날이 내 생일인데…
그때까지는 내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수 있겠지?
아주 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이 계절과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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