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자루 없는 칼이다. 그래서 권력은 가볍게 쥐어야 한다. 칼날에 손을 베지 않도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거나 잊고서 자신을 망쳤는가.
최근에 그렇게 자신을 망친 사람은 파키스탄의 수상이었다가 군부 정변으로 불러난 나와즈 샤리프다. 그의 몰락의 근본적 원인은 그가 이끈 정권의 무능과 부패였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몰락을 불러온 직접적 원인은 권력을 굳게 잡고 휘두르려는 그의 욕심이었다. 그의 권력에 대한 욕심은 하도 커서, 그는 자신의 정적들을 핍박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기구들을 조직적으로 허물었다. 언론 기관들은 갖가지 방식들로 탄압을 받았고, 경찰과 같은 권력 기관들의 요직들은 그의 추종자들로 채워졌다. 심지어 사법부마저 그의 탄압을 받았으니, 1997년에 그와 대법원장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자, 그의 정당 요원들이 대법원을 포위했고 대법원장은 파면됐다. 마침내 그는 마지막 독립적 기구인 군대마저 자신의 뜻을 맹종하는 조직으로 만들려 했으니, 그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쓰는 것을 비판한 참모총장을 파면했고 이번에 집권한 퍼베즈 무샤라프 대신 자신의 심복을 참모총장에 임명하려했다. 자신들이 파키스탄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여기는 군부는 그의 그런 기도에 반발했고, 그것이 이번의 군부 정변이 나온 배경이다.이승만 대통령에서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대부분 권력을 굳게 잡고 휘둘렀다. 결과는 물론 좋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권력이라는 날카로운 칼을 가볍게 쥐고 조심스럽게 썼더라면 망명과 암살과 투옥으로 얼룩진 그들의 말년은 한결 평화로웠을 것이다.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권력을 굳게 쥐어야 정치 지도자들이 임무를 수행하고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권력을 자신의 손안으로 끌어 모으는 정치 지도자는 언제나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큰 권력과 큰 업적 사이엔 별다른 상관 관계가 없다.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은 실은 업적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된다.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력은 큰 반발을 불러오고 부작용들을 낳으므로 그것을 유지하는 데 정치 지도자의 정치적 자산이 대부분 소모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권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을 하는데 필요한 수단이라는 사실은 잊혀지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도 권력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가 취임한 뒤, 정국은 줄곧 얼어붙었는데, 가장 중요한 까닭은 역시 힘센 대통령이 되고 싶은 그의 욕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김대통령이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오랫동안 야당 지도자로서 험한 길을 걸어왔고, 이제는 비교적 취약한 정치적 기반 위에서 정국을 주도해야 하므로 그가 힘센 대통령이 되려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김대통령도 자신이 권력의 칼을 너무 세게 쥐었으며 거기서 나온 부작용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취임 뒤 줄기차게 이어진 야당 총재에 대한 공격에서부터 최근의 '중앙일보 사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비판자들을 억누르려는 그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적지 않는 상처들을 입혔다. 이제는 김대통령이 권력의 칼을 가볍게 쥘 때가 됐다. 그런 점에서 그가 이번에 얼어붙은 정국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필요하다면, 야당 총재와 회담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크게 반가운 일이다.
소설가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남아공 대통령·호주 총리와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