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노진철(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1999-10-29 00:00:00

우리 사회는 다른 어떤 사회보다도 오랜 공동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족을 중시하는 동양적 가치관은 부모와 자식간, 형제간, 부부간에 권위적 관계를 강요하고는 있었지만 가족의 불운에 대해 전가족이 공동으로 대처하는 연대의식을 심어주었다. 그것은 역사가 일천한 서구에 비해서도 자랑할 만한 전통이다. 지식인들은 '우리'라는 가족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공동체의식이 현대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발달하면서 나타나는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물론 '우리'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가족주의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어야 했다. 지식인 들은 홍익인간 사상, 상부상조 문화의 전통을 들어서 공동체의식의 형성을 교육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는 지역연고주의가 가족주의의 현대판으로 등장했다.

남에게 배타적인 '우리'의 이러한 태도는 사회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와 남의 경계짓기는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학교간, 기업간, 교회간, 정당간, 군부대간 등등 경쟁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경계짓기는 일어나고 있으며, 각종 선거에서는 으레 지방간, 지역간의 경계짓기가 판을 친다. 남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으며 경쟁에서 이기려고만 한다. '우리'속에서 지켜지던 예의와 겸손, 도덕률도 남에 대해서는 무시된다.

내 경험에 따르면, 남에 대한 배려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 큰애와 작은애는 남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큰애의 독일생활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큰애도 독일에서 유치원에 다니기 전에는 작은애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독일 유치원 선생은 큰애가 제 욕심을 부릴 때마다 끈기있게 남을 배려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다는 것을 가르쳤다. 큰애는 서서히 아픈 사람, 가난한사람, 불편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배워갔다. 그러나 작은애는 여기서 유치원을 다니면서 오히려 남에게 양보할 줄 모르는 아이로 되어간다. 유치원 선생은 각종 놀이에서 아이들의 경쟁심리를 부추기고, 남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양보할 줄을 모른다.

장차 우리 사회가 자기밖에 모르는 투쟁적인 인간만 사는 삭막한 전투장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의 교실붕괴, 학교파괴도 남에 대한 배려를 모르는 탓이다. 남에 대한 배려는 삶의 일부가 되도록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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