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반도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인구 200만의 작은 섬나라 싱가포르. 이런 소국을 오늘날 '아시아의 작은 용'으로, 정의롭고 깨끗한 부국으로 키워낸 인물이 있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李光耀·76) 전 총리. 90년 총리직을 사임하고, 현재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있는 정치인사로 활동중인 그는 아시아의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다.
확고한 카리스마로 장기간 싱가포르를 통치한 그는 누구인가. 문학사상사에서 번역돼 나온 그의 일대기 '리콴유 자서전'(원제 '싱가포르 이야기')에 그 해답이 들어 있다.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중국인 3세로 태어난 그는 영국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어 귀국한 청년 리콴유는 노동운동에 열성적으로 가담하면서 싱가포르 정계에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든든한 입지를 마련한 계기는 1954년 인민행동당 창당이다. 이를 계기로 싱가포르를 이끌어 나갈 든든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당시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자치령(57년)이었다. 불과 5년만인 59년 총선에서 승리, 리콴유는 35세의 나이로 싱가포르 자치령의 총리가 된다. 총리취임 후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으면서도 점차적으로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등 능란한 정치술을 발휘했다. 그 무렵 그는 총리로서 결단을 내렸다.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 국내외 정치인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1963년 연방 가입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인 사이는 물과 기름 관계. 64년 두차례의 대규모 민족폭동으로 인해 이듬해 연방 탈퇴를 선언한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분리독립시키면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된다.
정치지도자 리콴유의 일생은 투쟁의 삶이었다. 식민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민족차별주의자들과 투쟁했고, 싱가포르를 빈곤에서 번영으로 이끌기 위한 힘겨운 여정이었다. 때문에 이 회고록은 '싱가포르의 현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인이면서도 제대로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해 자책에 빠지는 인간적인 좌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정직하고 유능한 정부를 강조했다. 공공질서와 안보가 보장되는 사회를 지향했다. 이런 그의 지도력 덕에 싱가포르는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뤄냈다.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지난 반세기동안 그는 치열하게 몸부림쳤다. 지도자로서 싱가포르를 살리기 위해 모든 열정을 보탰고, 또 고뇌했다.
그는 회고록 집필 동기에 대해 "안정과 성장, 번영만을 보고 자란 싱가포르의 젊은 세대들이 터무니없는 자신감에 들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혀 원로 정치인의 나라사랑이 어떠한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徐琮澈기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TK를 제조·첨단 산업 지역으로"…李 청사진에 기대감도 들썩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트럼프, 중동상황으로 조기 귀국"…한미정상회담 불발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