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동양에서 학문은 기본적으로 인격 수양의 매체로서 이해되어 왔다. 학문은 도를 깨치기 위한 전제 조건이자 그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따라서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인적인 인간, 즉 군자를 배양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고, 학자들은 윤리적인 주체의 확립에 주력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근대 서구에서 학문이란 철저한 전문 교육의 일환이었다. 학문은 인격 수양을 통해 사물의 도리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오는 매체가 아니라 현실적인 삶의 잡다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실용적인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열정의 소유자인 전문가가 군자를 대신하는 교육 목표로 설정되기도 했다.
사물의 이치에 두루 통달한 도덕적 이상형을 배출하고자 하는 동양의 학문관은, 개별영역들의 분화가 점차로 세분화되어 가는 오늘의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측면에 치중한 경향이 있다. 나날이 복잡해져 가는 현대적 삶의 방식은 도덕적 수양에 의거하여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점점 더 희박하게 만들어 버린다. 세분화·복잡화되어 가는 현대의 전반적인 추세에 발맞추어 학문의 세계 역시 전문화·정밀화되어 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실용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나 전문영역에만 한정된 지식의 추구는 학문을 도구화하거나 다른 영역에는 한 치의 관심도 없는 편협한 지식 전문가를 양산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동양의 전통적인 학문관에서 강조하고 있는 전인 교육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의 학문에서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는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지식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학문 풍토에서 산업화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과 학문의 비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인교육은 오늘날에도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학문과 전체 사회의 연관 관계와 그 결과를 명백하게 인식하고, 학문을 통하여 더 나은 인간존재로 변화하기를 꿈꾸는 자세는 오히려 다른 어떤 시기보다 현재에 더욱 요구되는 태도이다.
무지와 권위에서 해방된 현대 사회에는 학문이 어떠한 환상이나 신비화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명석성을 추구함으로써 진리를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에 토대를 두지 않은 몽롱한 이상만을 추구한다거나 전문적인 기술이나 인식 없이 타 영역에 간섭·개입하는 것은, 학문을 우리 시대에 맞지 않는 또 다른 미신이나 권위로 변질시켜 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나 전문 영역에만 지식을 유폐시키는 것은 학문의 도구화와 기계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학문이 단순히 실험실의 기계적인 절차나 실체 없이 추상화된 공허한 공식이 되지 않도록, 사회 다른 영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전체 사회와 맺는 연관을 고려해야 한다. 요컨대, 전문가다우면서도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등한시하지 않는 전인적인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학문적 이상은, 세분화·복잡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문적인 기능을 지니는 것과, 기능성과 실용성의 덫에 빠지지 않고 사회적 총체로서 자신을 항상 염두에 둘 수 있도록 전인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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