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화 속 여주인공들의 공통점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그들은 스스로 옷을 벗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이른바 '내숭'을 떨고 있다. 옷자락이나 머리칼, 나뭇잎,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손바닥으로 국부를 가리고 수줍은 듯, 사랑스런 눈길로 감상자를 쳐다보거나 눈을 내리깔기도 한다.
결국 보여줄 건 다 보여주면서도 수줍음을 간직한 여성이 진정 아름답고 에로틱하다는 누드화 수요자, 남성들의 여성상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이 낳은 거장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의 '옷 벗은 마하'는 충격적이다. 벗은 몸에선 당당함이 풍겨나고 모델의 눈동자는 사뭇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날 봐, 이래도 네가 나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듯.여신이나 성처녀가 아닌 실존 여성의 누드를 송두리째 햇빛아래 드러낸 대담함은 당시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 고야는 종교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이때문에 작품자체의 예술적 가치는 오히려 소홀하게 취급될 정도.
당연히 모델에 대한 궁금증도 클 수밖에 없지만 작가는 이를 밝히지 않았다. 어쩌면 가톨릭의 전통이 강했던 스페인의 사회 분위기상 모델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배려였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마하'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알바 공작부인은 후손들의 혼사길이 막히는 피해를 입었다. 급기야 1945년 후손들이 알바부인의 미이라를 꺼내 시신의 신체 비율이 그림속 마하와 다르다며 소문을 부인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여기서 고야가 사랑했던 여인 알바 공작부인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호사가들 사이에서 그녀가 '옷 벗은 마하'의 가장 유력한 모델로 거론되는 것은 특유의 대담한 성격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부를 축척한 스페인 최고의 명문가 귀족이었던 알바부인은 수도원에서 소녀시절을 보내다 결혼하던 동시대 여성들과 달리 루소의 '에밀'을 탐독했던 할아버지 덕분에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자유롭고 개방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로인해 '경박하고 무식하다'는 혹평과 '스페인의 비너스'라는 찬사를 동시에 받았던 터라 '옷 벗은 마하=알바 공작부인'이라는 등식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추측일 뿐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대부분 학자들의 의견이다. 물론 분위기나 얼굴의 일부에서 닮은 점이 발견되지만 제작연대가 알바부인과 이별했던 시기와 상당히 차이가 있고 키가 컸던 알바부인에 비해 마하의 몸매는 통통하고 작달막하기 때문이다.
1795년을 전후해 초상화 제작을 계기로 만난 알바부인과 고야의 관계를 가장 잘 묘사한 작품은 초상화 '알바 공작부인'.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의 발 아래 둔 듯한 표정의 부인이 당당하게 가리키는 바닥에는 'GOYA'라고 새겨져 있다. 그 글자 앞에는 'SOLO'라는 단어가 모래에 파묻혀 있다. 두 단어를 합치면 '오직 고야뿐'이라는 뜻. 당초 그 작품에는 두 단어가 적혀 있었는데 나중에 공작부인의 사랑이 식을 무렵 고야가 'SOLO'라는 단어에 덧칠을 했다는 설도 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인 알바부인과 고야의 관계는 오래지 않아 끝나버렸다. 하지만 고야의 사랑은 식지 않았는지 '변덕-날아가 버렸다' 등 부인의 변심을 암시함으로써 이별의 아픔을 묘사한 작품이 나타나고 있다.
'옷 벗은 마하'의 모델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논쟁은 어쩌면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시대를 앞서 살았던, 그래서 지탄의 대상이 됐던 한 여성의 당당함과 그녀에 대한 사랑이 고야로 하여금 또 하나의 걸작을 만들게 했다는 사실이다. 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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