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김정숙(영남대교수·국사학)

입력 1999-10-20 14:01:00

어느 한국 독립운동사 교수님은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일본 놈들이 나라를 삼켰고, 미국 애들이 이들의 무장해제를 제대로 못했고, 한국 사람들은 이의 짐을 지고 살면서…"라면서, 일본놈과 미국애, 한국 사람으로 일관해서 칭하셨다. 시험지 답안을 작성할 때 과연 이 3국 사람들을 어떻게 구사해야 할까를 걱정할 정도로까지. 그 귀절이 귀에 쟁쟁한 내가 일본을 다니게 되었다. 특히 도쿄에.

일본인들이 작고 앙증맞은 것을 잘 만든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화장실에 갔는데, 앞쪽에 아주 작은, 꼭 벼루같은 조선시대 연상같이 생긴 작은 상이 놓여 있었다. 들고 있던 책을 얹으니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니었다. 참 작은 공간으로 만들어진 화장실 안에 있는 조그마한 상, 주로 앉는 사람의 눈 앞쪽으로 놓여 있는 이 작은 상을 여러 곳에서 마주쳤다. '놈들'의 나라에서 발견한 이 작은 물건에 대한 착상….

우리나라 여자 화장실 안에도, 대학교 내의 경우에는 무언가 물건을 놓도록 머리 위 편에 작은 선반이 있는 화장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시내로 나서면은 고속도로 휴게실이나 역이나, 극장안 등등의 화장실에는 물건을 거는 꼭지가 달려 있거나 아예 아무 장치가 없다.

여자의 물품 중에 벽에 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혹시 신문이나 책이라도 한권 손에 쥐고 다녔으면, 이 책을 어떻게 하고 일을 보아야 하는가? 짐은 가방 안에 놓아두고 손지갑만 들고 나온 경우는 어떤가? 손잡이가 달린 핸드백은 걸지 않고 상이나 선반 위에 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걸 수는 없지 않은가? 혹시 휴지걸이와 좌뚜껑을 이용하느라 곡예를 한 경험들은 없으신지.

벽에 거는 못과 작은 선반 두 개를 다 설치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하나라면 역시 물건을 놓을 수 있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화장실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밖에서는 앉지 않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남자들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여자들이기 때문에, 생산자가 생각지 못한 점을 꼭 사용자가 지적해야만 하게 된 상황이란 말인가?

이제 여자들도 혼자 먼길을 가고 와야 하는 일들이 차츰 많아지는 세상이라 동행이 있어 화장실 앞에서 소지품을 들고 있으라고 할 기회도 점점 드물어진다. 그렇다면, 이는 작은 일이지만 고려해 볼 수밖에.

공중 화장실에 작은 상을 놓으면, 그것을 사용하고는 각자 집으로 가져갈까봐 설치하지 못한다고 할 시대는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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