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욕만 가르치는 정치9단'

입력 1999-10-19 00:00:00

욕(辱)은 별, 때를 의미하는 진(辰)과 법(法)을 뜻하는 촌(寸)의 뜻이 합쳐진 말이다. 그 옛날 농사에는 별로써 때를 가늠했는데 이 때를 잃는 자는 당시 인간사의 대본(大本)인 농사를 그르친 탓으로 죽여서 욕을 보였던 것. 욕의 유래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다. 요즘에는 욕까지 할 수 있는 스스럼없는 사이를 욕친구라고 부르지만 욕교(辱交) 또는 욕우(辱友)의 원래 뜻은 욕지(辱知)로, 자기같은 하찮은 사람을 지기로 사귀어 준 것이 그사람에게는 욕이 되는 일이요, 자신에게는 영광이 된다는 쌍방 겸양의 뜻이다. 세상에서 김영삼.김대중 두사람을 일러 '40년지기', '40년동지' 또는 그 이상으로 불렀던 말이 이젠 허언(虛言)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들의 관계는 결국 정치란 공통의 수단때문에 시작됐고 권력이란 공통의 성취때문에 끝을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자연인 김영삼(YS), 김대중(DJ)이 아닌 전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으로, 쉽다면 쉽고 또 어렵다면 사돈관계에 비길 바 아닐 것이다. YS가 부산에서 DJ에게 '역적' '역사의 죄인' '용서할 수 없는 자'라고 쏟아부은 것은 오직 욕설 그 자체일뿐, 아직도 사그러들지 않는 민주화의 일념 등은 애초부터 아니었다. 현직 대통령을 '역적'으로 칭했다면 '국사범'으로 몰아 붙였다는 얘기와 다름아니다. 법정기간내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용케도 잘 참는다 했던 DJ의 막료들이 기어코 맞붙은 건 또 유감이었다. '그런 열등분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데 대해 정말 후회하고 개탄한다'고 했으니 결국 장군멍군이 돼버렸다.대변인이란 당의 공식 견해를 밝히라는 자리지 전직 대통령을 '열등분자'로 부르라고 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저러나 후배 정치인들이 9단급 원로들에게 무엇을 전수받을지 미상불 예삿일이 아니다.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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