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현안 석학 대담-베르니스 교수

입력 1999-10-08 15:01:00

손병해 교수:동아시아 국가들이 최근 경험했던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대안을 찾기위한 모임인 대구라운드 세계대회에 참석해 주신데 감사드립니다. 평소 선진국 중심의 국제경제질서와 자본 자유화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세계화라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군요.

드 베르니스 교수:세계화가 무역의 확산과는 명백히 다른 개념이란 것부터 말씀드리고 싶군요. 원래 무역이란 원거리에 있는 재화를 지리적 이동을 통해 확보하고 상거래에 이용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세계화된 국제시장은 다국적기업에 의해 통합돼 있는 상태죠.

손:그렇다면 세계화를 어떤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역사적 발전과정은 어떻게 전개돼 왔습니까.

베르니스:세계화는 1천여년 전 로마제국이나 몽고제국 시기부터 존재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존재형식이 달랐던 것 뿐이죠. 예컨대 현대의 세계화는 금융부문의 지배를 특징으로 하는 세계화입니다. 12세기의 백년전쟁을 계기로 유럽 일부 지역이 세계화됐다면, 15세기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을 중심부와 주변부로 하는 세계체제가 구축됐습니다.

손:자본주의 경제가 시작된 시기군요.

베르니스:그렇습니다.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금융이란 현상도 이 시기부터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또 국제정치적으로 영국, 네덜란드 등이 패권국가로 등장하며 식민모국과 식민지를 두 축으로 하는 세계화가 이뤄집니다. 이 구도는 2차대전까지 세계화의 틀로 작동합니다. 한편 18세기 산업혁명으로 국내에서 소화하지 못한 상품을 해외에 팔아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이에 따라 무역이 확대됐죠. 또 석탄, 석유 등의 에너지 개발, 대중교통 수단의 탄생으로 인한 운송시간 단축, 통신수단 발명 등 현대적 세계화의 기술적 기반이 마련됩니다.

손:오늘날 현대 경제체제의 기본적 틀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2차대전 이후의 시기를 중심으로 국제경제구조 발달사를 들어볼까요.

베르니스:2차대전 직전까지 세계경제의 특징이 식민지블록간 대결이었다면 전후엔 대부분 식민지들이 독립, 국민국가를 수립합니다. 그러나 당시 세계화의 특징은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와 상관없이 독자 경제계획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국제금융 및 무역질서를 조절하는 국제기구로 IMF, GATT를 구성하고 이를 양대 축으로 삼은 브레튼우즈체제가 성립된 것입니다.

손:그러나 브레튼우즈체제는 60년대말 무너지지요. 그리고 국제금융 및 무역질서는 날이 갈수록 혼란스러워져 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베르니스:전후 세계에서 패권국가의 지위를 차지한 것은 미국입니다. 경제는 물론 정치나 군사부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65년부터 이윤율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불황이 심화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를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금융부문이죠. 미국은 매년 엄청난 규모의 대외적자를 기록하지만 미국 은행들은 각국으로부터 예치된 달러를 국외에 유통시켜 국제금융시장을 엄청나게 확대시켰습니다. 환율 및 금리의 국제격차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금융산업을 통해 이윤을 얻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결국 현시기 세계화의 특징인 금융부문의 지배는 미국의 대외 적자에서 비롯된 것이죠. 그러나 세계경제 전체로는 투자, 성장, 고용을 악화시키는 전반적 불확실성이 초래됐습니다.

손:세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해 논의해 보았으면 합니다.베르니스:최근 세계경제에서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금융의 국제화입니다. 남미와 아시아의 금융위기로 귀결됐죠. 제3세계 외채문제는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을 갖게 된 은행들이 제3세계에 방만한 투자를 한 결과입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세계경제는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손:외채문제가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란 말씀이군요.

베르니스:우선 채무국이 누적채무 때문에 생산재 수입은 엄두도 못내면서 독자적인 경제개발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런 현상을 선진국의 입장에서 보면 생산재와 소비재를 수출하지 못해 국내 경기가 항상 침체상태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채무국을 더욱 어려운 상태로 몰아넣어 이같은 악순환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손:IMF가 국민경제와 국민경제를 조절하는 당초의 설립목적에서 벗어나 세계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군요.

베르니스:그렇습니다.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채무국의 부채상환을 보증하기위해 부당하게 요구되는 구조조정입니다. 개도국 자신의 경제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죠. IMF는 선진국들에 의해 배타적으로 지배되는 명목상 국제기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화라는 구호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이데올로기를 채무국이 수용하게 만들기 위한 허구적 명분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손:대안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베르니스:외채를 소멸시키는 것 밖에 없습니다.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이자와 금융적 수단을 통해 투자금을 웃도는 이윤을 확보했습니다. 일단 외채를 없애야 세계경제의 새로운 순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정리:李宗泰기자

◇대담자 손병해(孫炳海) 교수 약력=경북대 경제학과 졸, 프랑스 파리2대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초청연구원, 프랑스 파리2대학 초빙교수 역임, 현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