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우린 아직 멀었다

입력 1999-10-07 00:00:00

우리는 아직 멀었다. 언론사 사장이 탈세혐의로 구속된 걸 놓고 언론탄압이니 아니니로 신문마다 논조가 다르고 정부는 물론 여.야당의 시각이 확연하게 틀린다. 자연 국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지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다. 가령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사주(社主)가 탈세를 한 그 신문은 파산했을지도 모른다. 독자들은 언론 자체가 지녀야할 도덕성을 그 사주에겐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언론사의 최고책임자가 개인비리든 어떻든 탈세의 범법혐의가 있다면 그 신문은 구독할 가치조차 없다는 논리이다. 당연히 불매운동이 전개될건 뻔한 이치이니 도산할 수밖에 없다. 서구의 시민정신은 언론의 부도덕성을 용납하질 않는다. 그 만큼 언론을 신뢰한다는 반대논리도 가능하다.

##범법 신문.부도덕 정부 '멀쩡'

또 한편으로 정부가 언론탄압에 관여한 증거들이 신문에 폭로된다면 아마 그 정권은 변명할 여지도 없이 즉각 물러나야 했을 것이다. 실정(失政)을 숨기기 위해 온갖 공작으로 언론에 간섭, 국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한 부도덕한 정권에겐 더이상 믿고 따를 수도, 국정을 맡길 수도 없다는게 그네들의 결연한 사고이기 때문이다.멀리갈 것도 없이 미국의 닉슨대통령은 도청(盜聽)사실을 숨겼다가 들통이 나는 바람에 물러나지 않았는가. 거짓말 한마디에 정권이 왔다갔다하는 판국인데 언론에 부당한 간섭을 했다면 그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개의 사안이 병존하면서 진위(眞僞) 공방으로 지새우고 있으니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얘기이다. 서구의 선진시민의식에 입각한다면 신문사도 도산해야 하고 정권도 퇴진하는 게 마땅한 이치이다.

##잘잘못은 제3의 언론이 가려야

그 판가름을 누가 내는가. 국민들의 정확한 판단의 근거제시는 당연히 제3의 언론들이 객관적이고 냉철한 분석으로 그 몫을 해야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걸 확실하게 못하고 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당해 신문만 언론탄압이라는 갖가지 사실들을 외롭게 외치고 있다. 다른 언론사들은 적시하며 탈세는 그것대로, 언론탄압은 또 그것대로 각각 따로 따로 짚고 넘어가야 된다는 기본 원칙만 한두번 제기할 따름이다. 야당이 언론탄압이라고 규탄대회까지 열면서 외치지만 여당쪽에선 대선때 그 언론의 덕을 본 야당이 탈세한 언론을 옹호하고 있다는 정치공방전만 계속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도 탈세따로, 언론간섭 따로 따질 일이지 탈세를 마치 언론탄압으로 호도하는 그 신문의 제작태도를 나무라고 있다. 언론탄압을 받았으면 그때 즉시 밝힐 일이지 사주가 탈세혐의로 구속될 즈음해서 그걸 뒤늦게 공개하는건 사주의 범법행위를 호도하려는 일종의 책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전혀 터무니없는 논리도 아니다.

##의혹만 커져 헷갈리기만

연일 정부의 언론간섭 사실들이 계속 보도되자 사주의 탈세묵인과의 빅딜을 그 언론사가 제의했다는 정부측의 숨은 얘기까지 공개돼 그것대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한마디로 이전투구양상의 엉망진창이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잘못된건지 국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 사이 '국민의 정부'의 첫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무대인 국정감사장은 신문의 한쪽 귀퉁이로 쫓겨나 있다. IMF체제속의 국민들 입장에선 꼭 눈여겨 봐야할 국정감사내용은 그냥 떠내려 가고 있다. 내년 총선투표에서 귀중한 판단의 근거가 될것까지 언론이 간과하는 듯한 보도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몇몇 재벌의 엄청난 탈세소식이 또 이를 덮어버리고 있다. 그 탈세에도 표적 세무사찰시비가 일면서 국민들을 더더욱 헷갈리게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AP통신은 미군이 6.25전쟁초기에 '노근리 양민들을 학살했다'는 충격적인 미국방성의 극비문서를 근거자료로 제시하며 특종보도를 하고 있다. 미국의 국익에 손상이 갈 반세기전 남의 나라 소재를 인권유린 차원에서 폭로하고 있다. 미국 조야가 발칵했고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긴급 진상조사착수 선언을 받아 내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는 아직 멀었다.

'무엇 때문일까'를 우리 언론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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