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터진 양말

입력 1999-10-06 14:13:00

아침, 방송국 매점에서 김밥을 샀다. 아침 일찍 방송이 있어서 서두르는 바람에 배가 고팠다. 매점 주인은 김밥을 찍어 먹으라고 나무 젓가락을 주었다. 그 옆에 김밥을 간단하게 찍어 먹을 수 있도록 이쑤시개가 준비돼 있는데도, 순간 그 '커다란'나무 젓가락 하나면 이쑤시개가 몇개나 나오는데, 하는 서툰 나의 도량형 계산과, 그것들이 땅 속에 들어가 썩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까 하는, 학습된 의구심이 씁쓸하게 차올랐다. 그가 권하는 나무 젓가락을 제지하고 나는 얼른 이쑤시개를 밖으로 들고 나왔다.

차 안에서 김밥을 먹는데 돌아가신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시어머니의 삶은 경제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없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어진 내복이나 망가진 레이스, 양말의 터진 부분을 손수 꿰매 입고 신으셨다. 살아계신 동안 시어머니가 어렵고 무섭고 때로 불편한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다 희미하게 잊혀져 가는데 그렇게 자신에게 엄격한 모습만이 선명하게 각인돼 있는 건 무엇때문일까.

우리 두 아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오랫동안 집안 일을 돌보아 주시던 아주머니는 늘 발뒤꿈치나 발가락에 구멍이 난 아이들 양말을 기워주시곤 했다. 나는 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굳이 양말을 기워주는 그녀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만화를 공부하고 있는 딸아이가 방학 중에 다니러 왔을 때, 나는 그 아이가 양말을 직접 기워신는 걸 알았다. 그 양말은 꼼꼼한 솜씨로 꿰매져 있었다. 물론 그건 딸아이가 좋아하는 양말이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가 양말을 기울 시간에 영어 단어 한자라도 더 외고, 그림 한 장 더 그리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는게 아닐까, 라는 산술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그건, 예전 그 아주머니가 기워준 양말을 신고 다녔던 기억 때문이겠지, 나혼자 분석했었다. 그게 작지만 중요한 '교육'의 힘이라고.

나의 한 친구는 브랜드 마니아이다. 그에게 구찌, 루이 비통, 프라다는 아주 친숙한 일상이다. 그 정도 브랜드는 나도 안다. 그러나 그는 파리에서 그것을 사면 한국보다 더 싸기도 하거니와 또 디텍스까지 받을 수 있어 15% 정도는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일러주기도 했다. 그 친구는 그런 것은 때로 사막 한가운데서 자기를 안내해 주는 정신적인 사치이며, 그렇게 유통경로를 잘 헤아리는 것이 또 하나의 '검약스러움'이라고 강변한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나는 그렇게 고전적인 절약과, '세계화된'검약의 한가운데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 내 시선은 이미 터진 부분이 기워진 양말을 향해 있는채.연극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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