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죽었던 한 소녀를 기억한다. 입시위주의 획일화된 경쟁교육이 부른 예고된 사건이었다. 소녀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교사와 학생들은 모순으로 가득찬 교육현실을 비판하며 참교육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숱하게 많은 교육자들이 참교육, 인간화교육을 외치며 해고되고 투옥되면서까지 제도교육에 저항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많은 것이 변했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얼마전 여중생이 학교앞 가게주인의 모욕에 심한 굴욕감을 느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연이어 자신이 좋아하던 댄스그룹의 공연을 보고 온 후 부모에게 꾸중을 듣고 자살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 소녀가 남긴 유서에는 좋아하던 가수가 공연도중 다쳤다는 것과 이 때문에 너무 슬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 두 건의 자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그렇게 하찮게 버리는 것은 잘못됐다.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하다"며 결론내렸다. 자살의 원인을 당사자 또는 생명경시풍조 탓으로 아주 쉽게 단정지어 버렸다.
물론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여학생의 자살이 순간적인 격정과 충동을 못이겨 저지른 우발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하기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다. 기성세대는 반성해야 한다. 피와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은 기성세대다. 폭력과 섹스로 일관하는 저급문화를 만든 당사자는 청소년이 아니라 돈에 눈이 먼 상업적 문화장사치들이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온 더러운 사회적 풍토와 저질문화를 받아들이며 호흡하는 청소년들에게 생명경시풍조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청소년들의 어리석음을 나무라기 이전에 그들이 좀 더 깨끗한 공기로 호흡할 수 있도록 건전한 사회적 풍토를 마련해야 한다. 학교는 적자생존의 투쟁공간이 아니라 참다운 삶을 꾸려나가는 인간화교육의 장이 돼야 한다.
몸서리나는 지옥같은 교육현실이 죽음보다 싫었던 한 소녀가 이세상을 뜬지 벌써 10년이 다 됐다. 이제 다시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지는 청소년을 보긴 싫다. 다시는 기성세대의 일그러진 권위와 획일화된 제도에 시들어 가는 청소년을 이젠 보기 싫다.
선명 요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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