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측이 전한 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두번째 만남을 엮어 본다.
10월 1일 오전 10시 정 명예회장이 묵고 있던 평양 백화원 초대소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됐다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측으로 부터의 전갈이었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23일 함경남도로 현지지도를 나선 뒤 평양으로 돌아오지 않아 귀환 일정을 이틀씩이나 미뤄가며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일정을 하루 연기한 끝에 만날 수 있었던 지난해보다 더욱 애가 타고 있던 순간이기도 했다.
장소는 지난해 만났던 백화원초대소가 아닌 함경남도 흥남 서호초대소, 오찬 면담이었다. 정 명예회장 일행은 서둘러 백화원초대소를 나섰다. 그래도 넥타이까지 풀어 놓고 있다 김 위원장의 급작스런 방문에 당황했던 지난해 10월 31일 밤보다는여유가 있었다.
평양비행장에서 비행기가 출발한지 40분후 흥남 선덕비행장에 도착했다. 서호초대소에 도착하니 낮 12시40분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자 오후 1시 김 위원장이 나타났다. "안녕하셨습니까, 장군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명예회장 선생" 11개월여만의 두번째 만남이 시작됐다. 김위원장과 정 명예회장이 사진을 먼저 찍고 다음으로 정몽헌(鄭夢憲) 현대 회장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 위원장은 건강해 보였고 지방출장이 잦은 탓인지 얼굴은 다소검게 탄 듯했다.
김 위원장과 정 명예회장, 정 회장외에 북측에서 김용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면담이 이뤄졌다. 그간 있었던 금강산관광사업 얘기가 오갔다. 정 회장은 "휴게소와 공연장이 건설됐습니다"라고 설명하자 김용순 위원장이 "교예공연(서커스)이 인기 있습니다"라고 거들었다. "온천장과 부두공사도 하고 있습니다"(정주영) "1천명이 온천을 한다는데 물은 충분합니까"(김정일) "충분합니다"(김용순). 김 위원장은 김용순 위원장으로부터 정확히 보고를 받고 있는 듯했다. 정 회장은 지연되고 있는 외국인 금강산 관광 얘기를 꺼냈다. 김위원장은 "즉시 시작하자"고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김 위원장은 서해안공단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제품은 무엇을 생산해 어느나라에 수출할 겁니까, 기간은 얼마나 걸리지요"(김정일). 공단내 주거시설에 들어설 집을 지으면 미리 건물(모델하우스)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김위원장은 "공단건설에는 대찬성입니다"라며 "정확한 위치와 규모는 실무진들이 현지답사한 뒤에 결정하자"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정 명예회장 일행은 이를 민족적 사업으로 빨리 추진하자고 합의했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찾아 보자고 의견을나눴다.
화제가 농구로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올 12월중으로 서울에서 농구경기를 하라"고 지시했다. 예기치 않은 선물이었다. 또 체육교류를 정기적으로 곧 개최하라고 지시했다. 김위원장은 이번 농구경기를 못봤지만 기술자(전문가)들로부터 보고는 받았다고 했다. "여자는 남쪽이 이긴 것 같다. 남자는 우리 벼락팀의 평균 나이가 22세로 지난 3년간 농구육성을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이번 경기를 위해 이명훈(북한의 세계최장신 농구선수)이 소속된 팀과 연습을 많이 해 기량이 향상돼 이긴 것 같다"(김정일) "12월에 남쪽에서 시합을 하면 우리팀들이 텃세 때문에 고생 좀 할 것같다"고 농담도 했다.
'따뜻한 분위기' 속에 대화가 진행되자 정 명예회장은 마음속에 있던 김용순 위원장 초청 얘기를 꺼냈다. "서해안공단사업을 위해서는 김용순 위원장과 아태 관계자들이 현대를 방문해 이해를 같이 하는게 필요합니다.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김 위원장은 김용순 위원장에게 "(서해안공단) 사업계획이 확정될 무렵에 다녀오라"고 했다.
한시간 가량 면담을 마치고 오찬으로 이어졌다. 정 명예회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함께 방북한 이은봉 과장도 합석했다. 함흥냉면이 식단에 올랐다. 그래서인지 오찬때 화제는 냉면 이야기가 많았다. 김 위원장은 평양냉면을 좋아하는지 "함흥냉면은 별미니까 이번에 조금만 드시고 평양에 가서 냉면을 많이 드시지요"라고했다. "평양냉면은 모밀로 만들고 함흥냉면은 감자전분으로 만든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뱀장어도 메뉴였다. 남쪽과는 다르게 뱀장어를 쪄서 내왔다. "남쪽에서도 뱀장어를 먹습니까"(김정일) "서산농장에서 뱀장어가 많이 나와 많이 먹고 있습니다"(정주영)
오찬은 3시30분이 돼서야 끝났다. 정 명예회장은 만나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고 김 위원장도 잘 가시라고 했다.
이들이 헤어진 뒤 베이징(北京) 지사로 "명예회장께서 내일(2일) 오전 10시께 돌아가실테니 준비하라"는 김윤규(金潤圭) 사장의 지시가 전해졌다. 이때쯤해서 외부에서 가슴조이며 소식을 기다려온 현대 관계자들에게도 사실상 면담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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