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기억이다. 이웃집 세들어사는 젊은 부부가 갓난 아이 하나를 데리고 살았는데 참 조용하고 의가 좋았다. 그런데 하루는 부부싸움으로 동네가 떠나가도록 난리가 났다. 알고보니 아내가 남편의 생일을 깜박하고 그냥 지나쳤고, 남편은 온종일 벼르고 있다가, 생일 다음날에야 일을 마치고 온 뒤 날벼락을 때린 것이다. 하루 종일 집안에 앉아 무슨 딴 생각하느라 남편 생일도 염두에 없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어려서, 많아봐야 초등학교 2, 3학년 쯤 되었을까 했던 것 같은데, 좀 충격을 받고 배운 것이 있었다. 나중에 시집을 가면 다른 것은 못해도 옆에 있는 사람 생일은 꼭 챙겨야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그리스로 유학을 갔는데, 요즘 그리스 사람들은 생일축하 풍속이 우리와는 참 달랐다. 생일을 맞는 당사자가 사탕이나 단과자를 사서 주변에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형편에 따라 단과자가 좀 고급스럽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그 어느 쪽이나 경제적 부담은 거의 없다. 주는 이나 받는 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건네고 또 축하의 말을 듣는다. 그곳도 주변에서 생일을 맞는 사람에게 소품을 선물로 주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대부분은 그냥 과자를 받아먹고 만다.
이런 것은 말안해도 주변에서 미리 알아서 생일을 챙겨주는 우리네와는 너무 다르다. 특히 남의 집 며느리 되면 시집 식구 생일 잊어버리는 결례를 안하려고 여간 신경쓰는 것이 아니다. 또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생일은 발빠른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에게 '잘보이는'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아이나 어른이나 생일이 되면 은근히 바라는 마음도 생긴다. 이런 형편이니 어떤 사람들은 생일을 일부러 드러내기 쑥스러워 쉬쉬하고 지나버린다. 혹 주변에 부담을 주지나 않을까. 뭐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나 않을까 해서이다.
이렇게 다른 두 풍속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다는 말은 쉽게 하기 어렵겠지만, 참 중요한 것은 그리스 사람들이 자기 생일을 남에게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또 축하받기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인간관계에서 덜 권위적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다 못해 단과자 하나라도 남에게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런 곳에는 남편 생일 잊고 지나쳤다고 아내가 혼이 날 것이 아니라, 생일 맞는 남편이 단과자 사오지 않는다면 그야 말로 집에서 쫓겨날 형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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