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주민의 분노

입력 1999-09-28 14:36:00

"잇따른 수해로 두해 연거푸 농사를 망쳤건만 행정기관에서는 마냥 기다리라는 말만 합니다"

태풍 '바트'는 수확기에 임박한 농산물을 휩쓸고 간 것도 모자라 신용불량자도 무더기로 남겨놓았다.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2리 주민 이모(58)씨는 지난 추석 연휴기간 동안 내린 비때문에 망친 배추·무밭을 바라볼 때 마다 '지난해 수해로 진 빚을 갚기는 다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 무력감에 빠져있다.

이씨가 사는 도동리는 낙동강 범람을 막는 제방이 설치돼 있지 않아 비만 오면 논밭이 잠기는 상습침수지역. 이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에도 두차례에 걸친 수해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다시피 하면서 한해 동안 애써 가꾼 농산물을 건지지 못했다. 또 가을철 수확으로 한해를 살아야하는 주민들의 가계 사정상 생활비와 자녀 학자금은 빚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씨 등은 올해도 같은 일이 생기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며 행정기관에 제방 축조를 건의해 왔으나 '정부에서 예산이 나오지 않는다'는 답변만 되풀이되더니 다시 한해 소득을 깡그리 날리게 된 것이다.

추석연휴 내내 차례는커녕 집안에 들어온 물을 퍼내야했던 주민들은 지난 26일 구지면 사무소를 항의방문한 뒤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등 '과격한' 시위를 벌이고 기관장을 불러내기까지 했으나 그도 뾰족한 수를 내놓지는 못했다.

이씨는 지난해 빚과 함께 내년 수확철까지의 생활비와 대학생 자녀의 학비까지 마련해야하지만 이번 수해에 따른 채무 불이행으로 신용불량자가 될 처지다. 그는 "지난해 가을 이후 친척들의 갹출로 생계를 이어온 셈인데 마을 전체가 비슷한 사정"이라며 "재해가 매년 발생하는데도 대책이 없다니 행정기관은 뭐하는 곳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李宗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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