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면 단정한 넥타이 차림에 백발이 희끗희끗한 노신사들이 자전거를 타고 조용히 거리를 달리는 모습도 보인다.
일본 오사카 지방 최대의 한복집인 신흥상회를 경영하며 연간 90여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산노(山王)상사'의 회장 김시현(金時顯·72)씨도 자전거를 애용하고 있다. 그는 "자전거 타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몸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벌레처럼 살아온 과거의 체질이 몸에 밴 탓"이라고 말했다.
일본 국내에서 다른 지역보다 유달리 재일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오사카(大阪)시에는 경상도 출신 사람들의 주거 비율이 높다. 30여년전부터 경북 출신 동포들은 오사카 경북도민회라는 친목 모임을 가져왔다. 지난해 3월부터 이 모임의 회장을 맡은 김씨는 최근 새로운 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개소식에는 본국에서 이의근 경북도지사도 참석했었다.
김회장은 날이 갈수록 희박해져가는 동포 2~3세들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올여름 안동, 경주, 대구 등에서 청소년 여름 모국연수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는 경북 출신 동포들만을 위해 일한 것은 아니다. 한때 재일거류민단 오사카지부 단장, 중앙본부 부단장, 오사카 한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을 맡아 전체 동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서도 봉사해 왔다.
경북 의성군 신평면 금곡리에서 태어난 김씨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고 있었는데 일찌기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공장에 다니는 형을 믿고 혼자서 현해탄을 건넜다. 해방되기 3년 전인 그의 나이 15세 때의 일이었다.
종이공장에서 고학을 하며 중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패전 직후의 일본은 심한 혼란기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생활이 힘든 시기였으므로 그는 행상을 시작했다. 물자가 귀한 시절이라 오사카 암시장에서 싼값에 옷감을 구입해 일본 동북지방 아오모리(靑森)를 거쳐 북해도까지 팔러 다녔다. 그 해 겨울의 추위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는 그는 현지에서는 옷감을 팔고 돌아올 때는 콩이나 팥 등 잡곡을 받아 와서 과자공장에 넘기는 장사를 했다고 한다.
그후 그는 오사카 츠루하시(鶴橋) 암시장에서 고무신을 팔고 있던 친구의 가게에 취직했다. "전화 보급이 늘어가기 시작하자 각지에서의 전화 주문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자전거로 배달하고 포장하고 발송하는 작업에 정신없이 힘을 쏟았지요"김씨는 2년 정도 자전거 배달을 꾸준히 계속했다. 이때 고무신 가게 바로 앞에 있던 '경안상회'라는 한복점의 주인이 안동 사람이었는데 성실한 이 경상도 청년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 보고 자신의 딸과 선을 보게 했다. 그는 딸 6형제가 있는 그 집안의 사위가 됐다.
그는 '신흥상회'라는 상호를 내 걸고 가게문을 열어 비단 등 옷감을 팔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30세때 였다. 신흥상회는 오사카 쓰루하시 시장에서 동일 업종의 상권을 거의 독점했다. 가장 많은 품종의 제품을 구비하고 있었으며 밤 늦게라도 단 한명의 고객이 떠날 때까지 영업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연중 하루도 문 닫는 날 없이 고객을 맞았다. 그래서 언제라도 어떤 물건이라도 그 집에 가면 필요한 만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나게 됐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생긴 포탄 껍질 등 고철을 수출하는 상선의 왕래가 빈번해졌다. 많은 선원들이 일본을 방문했고 그들은 귀국길에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비단을 수입해 가기 시작했다.
"그때는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이었지요. 코베(神戶)나 오사카 항구에 배가 도착하면 중간상인들의 80~90%가 우리 가게로 몰려들었지요"
단골 고객이 늘어나고 많은 돈을 벌게되자 사업자금이 부족한 동포 상인들에게는 자금을 빌려 주기도 했는데 간혹 그들이 밀무역을 하다가 검거되면 빌려준 돈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1960년대로 접어들어서는 생활이 조금씩 윤택해진 재일동포들이 늘어나고 2~3세의 결혼식과 회갑연 등 명절에는 민족의상인 한복을 입으려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그밖에도 동포들끼리 모이는 행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즐겨 입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한복집 경영을 시작했다.
오사카, 코베, 교토 등 간사이(關西)지방에서는 거의 독점 업종이었고 자연스럽게 많은 동포들이 모여들어 일본 속의 한복집으로 '사랑방' 역할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인근에 4군데의 파친코점을 개업하고 다른 업종들도 모아 '산노(山王)상사'를 설립했다.
오사카 경북 도민회장을 맡으면서 동포들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등 그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기저기 감초노인으로 뛰어 다닌다.
"젊은 시절 간혹 실패도 했으나 당시에는 일에 재미가 있었지요. 그때는 번개처럼 포장해서 운송회사로 보내고 다시 가게로 달려오기도 했는데 이 시기에 나의 자전거 배달 실력은 그 진가를 발휘했지요"
별을 보며 집을 나서 별을 보며 귀가하던 그의 부지런함은 몸에 배어 지금도 점포에 나가서 다른 직원들 몰래 청소하거나 기계를 손 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전거 타기를 고집하다 넘어져 옆구리를 다쳤다. 출발 순간 패달을 헛밟아 쓰러졌는데 가족들은 이러한 그의 행동에 대해 나이를 강조하며 거의 세워두고 있는 회장 자가용 이용을 권하고 있다. 그래도 그는 넘어지기는 처음이라며 아직도 자전거 타기를 고집하고 있다.
"간혹 경북 의성군 신평면 고향에 가면 어릴적 같이 놀던 친구들을 만납니다. 막걸리 몇 통 사서 그들과 동네 앞 언덕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 보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지요. 그곳은 어릴때 내가 소먹이러 가던 곳이라 늘 그리워하던 장소였지요"일본에서 우리 고유의 한복을 만들어 보급해온지 40여년 세월, 그는 경북도민회에 해마다 5천만원씩의 찬조금을 내는 것을 비롯 88서울올림픽때는 1억원을 내는 등 자신이 낸 각종 기부금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며 일일이 밝히기를 사양한다.
맨손으로 출발해 검약과 성실로 성공했으며, 동포를 위해 봉사하는 그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비롯한 많은 상을 받았고 지역사회에서도 마음씨 좋은 노신사로 존경받고 있다.
朴淳國·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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