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엿듣고 있다'
매일신문사 기획취재팀이 살펴본 대구지역내 불법도청 실태는 우려할만한 수준이었다.
관공서 등 광범위하게 감청공포에 떨고 있는 가운데 불법적으로 사생활을 감시하는 도청도 아파트단지, 주택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취재팀이 도청방지업체 직원들과 불과 5시간동안 시내 대로변만을 중심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는데도 10여개의 도청기가 설치된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는 이러한 도청으로 불륜 및 채무자 추적, 가족 구성원간 뿌리깊은 불신이 낳은 비열한 범죄행위가 우리 주위에 깊숙이 침투해 있음에도 뚜렷한 근절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정치권에서 불법 도.감청 문제가 불거진 후 최근 전국 경찰이 일제 단속에 나섰지만 힘에 부치는 듯한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 12일부터 한달간 단속에 나선 대구지방경찰청이 22일 현재 올린 실적은 단 1건도 없다. 전문 탐지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경찰이 가정, 기업 등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도청을 알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 지난해까지 암암리에 도청기를 팔아왔던 대구 교동전자상가에서는 올들어 도청기가 자취를 감췄고 30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역 심부름센터의 상당수가 경찰 단속 이후 '잠수'했다. 이들은 의뢰인들의 잇단 문의에도 "도청은 절대 해주지 않는다"고 잡아떼지만, 도청을 필수불가결한 수단으로 애용했던 과거 선례에 비추어 이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확산되는 도청공포증에 따라 자구책을 모색하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최근 신문에 도청방지기 판매광고를 낸 지역의 한 벤처기업은 일주일만에 15대를 계약하는 등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 도.감청에 민감한 지역내 정당, 기업체, 관공서 등에서 구입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는 것. 이 회사의 도청방지기가 한달후에나 출시되고 고가(대당 280만원대)인 점으로 미뤄볼때 지역사회가 도청공포에 떨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대구의 한 기초단체장은 지난해 집무실 소파에 감춰져 있던 도청기를 발견한 후 '몰래카메라'까지 설치, 틈입자를 감시하고 있다. 정치인이나 기관단체장들은 감청에 대비해 서로의 직함을 생략하고 본론부터 말하는 전화통화방식을 관례화하고 있다. 휴대폰 번호를 수시로 바꾸거나 여러대의 휴대폰을 돌려가며 사용하는 것도 애용되는 방지책 중 하나.
도청에 대한 처벌은 더욱 난망하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이 있긴 하지만 도청의 특성상 도청기를 발견한다 하더라도 누가 설치했는지를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 당국의 소극적 단속과 물렁한 법조항의 틈새에서 불법도청은 여전히 '전파의 힘이 강함'을 입증하며 '성업'중이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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