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작은 사랑

입력 1999-09-20 14:10:00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 보다 시간이 빨리 간다. 구체적 실감으로도 시간이 빨리 간다는 기사를 본 기억도 난다. 어쨌든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도 더 많아야 하고, 경제적 능력도 더 커야 한다. 저 혼자 잘난 줄 알고 바삐 살던 청춘이 지나면 이제 이 세상은 누구라도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요즘 내 우편함은 팸플릿과 초청장으로 가득하다. 무슨 무슨 행사와 공연에 오라는 것부터, 강연 요청에 이름을 필요로 하는 곳까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 내가 그만큼 시시하게 살지 않았다는 감사한 방증이지만, 그건 마음과 달리 여의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늘 공연을 하고 극장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난 여름 홍수를 겪으면서도 그랬다. 나는 변변하게 수재 의연금을 내지도 못했다. 신문과 방송에 매일 매일 보도되는 성금 액수와는 나는 거리가 먼 듯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그렇게 마음에 부담을 안고 있던 나는 지진을 만난 터키에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일, 나와 윤석화와 노영심은 서울 강남의 한 와인 살롱에서 콘서트를 연다. 이 콘서트의 슬로건은 '터키 사랑 일일 콘서트'. 표를 많이 팔아 성금이 모이면 그걸 하나도 빼놓지 않고 터키로 보낼 예정이다. 이날 분위기가 좋다면 성금을 걷을 생각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국내의 문제들을 외면하고 다른 나라를 돕느냐고 의구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더불어 사는 방법은 마찬가지다. 소말리아나 북한을 돕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터키사람들의 상심을 나눠 갖는 이웃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나는 연극표는 잘 못 팔면서 이날 행사를 위한 티켓은 씩씩하게 잘도 팔았다. 그건 거창한 게 아니다. 마음은 있되 방법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창구 혹은 출구일 뿐이다. 이 행사를 위해 몇가지를 준비하면서 나는 이렇게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자꾸만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 수첩에 적혀져 있는 명단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건 능력만 있다면 그 이름들에 닿고 싶은 내 마음이 담겨 있는 목록들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 위에 얹어져서 작은 사랑을 만드는 그런….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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