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이라는 나무는 살아서 천년을 누리고 죽어서도 천년을 누린다고 한다. 살아서 천년이고 죽어서 천년이라면 그 견고함이 어느 정도이어야 하겠는가? 그러나 주목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나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연한 잎과 부드러운 몸통과 연한 각질의 껍질 뿐이다.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안으로는 단단하고 견고한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감동은 다른 것에 비해 자못 큰 것이다. 부드러운 나무는 바람에 휘어지긴 하지만 쉬이 꺾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단하다고 바람과 힘 겨루기를 하는 나무는 조금만 강한 바람이 불어도 쉬이 그 가지나 몸통이 꺾이고 만다.
◈거짓이 횡행하는 사회
요즘, 정치판을 보면서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서양의 어느 정치가 말대로 정치는 사자의 앞발톱과 여우의 간교한 꾀를 지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당한 거짓과 적당한 위장술과 적당한 꾀와 필요한 때 써먹는 음험한 힘을 지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보면 그러한 꾀와 제스처와 위장술은 멀지 않아 그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람과 더불어 살고 사람과 더불어 경영해 나가는 것이 국가이고 국가를 위해 하는 것이정치이거니, 그러한 단견들이 어찌 오래 그 가면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신문을 펼쳐 들면 온통 거짓이 횡행하는 사회, 거짓이 횡행하는 정치가 자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밖으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안으로는 고관들의 옷 로비 의혹사건, 주가 조작 사건들이 하루도 쉼 없이 꼬리를 문다. 이러한 사태에 이제 시민들은 식상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무관심해졌을 것이다. 무관심은 마침내 냉담을 낳고 냉담은 사회 혹은 정치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스스로 길을 찾고 열자
물론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문화나 예술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으로 보면 악과 예술은 다른 얼굴을 지닌 쌍생아인지도 모른다. 시대가 어지럽고 사회가 혼란할 때일수록 우리는 그 자리에 아름다움을 심어줄 수 있는 부드러움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 일은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가 그 길을 찾고 열어야 한다. 스스로가 아름다움을 찾고 경작하는 사람만이 이 혼탁하고 누추한 세상을 밝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바라건대 소위 정치가들도 그러한 자성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칸트가 말했듯이 예술이란 무목적의 목적에 도달하는 길이다.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기대하며 하는 것이 예술이 아니다. 정치란 눈 앞의 목적이 있고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양보해서는 안되는 목표가 있겠지만 그것을 예술행위와 같이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결국에는 승자가 된다는 사실을 그들도, 우리도 체득해야 한다.
이미 유럽이나 아프리카의 몇 나라에서는 예술가가, 시인이 대통령이 되어 국가를 경영하고 나라의 이름을 선양한 경우도 많이 있다.
부드러운 나무, 그것은 우리 마음의 따뜻한 양지가 될 수 있고, 우리 마음의 가장 비옥한 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기철 시인.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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