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제비나 국수를 보면 어린 시절과 그 시절을 살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기억나곤 한다. 그야말로 울도 담도 없는, 혹은 담과 자물쇠 달린 문은 있으되 단지 형식적으로 달려 있어 내 작은 키에도 낮은 문턱에 올라서서 발을 곧추세우고 손만 쭉 뻗으면 자물쇠에 손이 닿아 철커덕 하고 문이 열려 버리는, 그런 집들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변두리 사람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울고 웃으며 사는 나름의 애환을 지녔다.
아침이면 애 타는 부모 속도 모른채 돈 달라고 손 내미는 자식에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속상한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담을 넘고, 밤이면 술취한 가장의 신세한탄이 동네 잠을 다 깨우는 그런 곳이지만, 그 속에서도 나누며 사는 정만은 풍성했다. 징징대는 자식들을 겨우 달래서 학교에 보내고, 빨래며 집안일을 겨우 끝낸 어머니들이 한숨 돌릴 정오 무렵이면, 동네의 어느 집에서건 반드시 수제비며 국수를 삶아다가 함께 모여 나누어 먹는 곳이 한 군데쯤은 있었다.
그 속에 끼여서 나누어 먹는 따뜻한 정, 집에서 홀로 차려먹는 성찬과는 다른 그것은 확실히 국수나 수제비 한 그릇이 아니라 쿰쿰하고 눈물나도록 시큼하고 따뜻한 사람의 냄새 한 그릇이었다.
나는 얼마 전에 그 시큼한 정을 어머니가 사시는 동네에서 발견하고는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새삼 고마워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가보지 못했기에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려는데, 바깥 평상에 상을 차려놓고 모여 앉은 동네아주머니들이 지나가는 나를 느닷없이 불러세웠다. "아이고 뉘기뉘기 막내딸 아이가! 엄마 시장가던데 여기 좀 앉아 같이 묵을래?"라고 말하는 동네 어른들은 제자식도 아닌 내게 그저 반가운 내색을 아끼지 않았다. 그럴 때 느끼는 느낌이란, 사유의 공간에 홀로 내던져져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카프카가 그랬던가, 존재한다는 것(sein)에는 현존(dasein)과 속함(ihm gegoren)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내가 이 세상에 속한 누구누구의 막내딸임을 확인시켜준 사람들의 싫지 않은 국수 한 그릇의 관심이 새삼 정겹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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