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퇴직 부부싸움 새불씨

입력 1999-09-01 14:05:00

퇴직은 부부 싸움의 시작?

남편의 퇴직 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정들이 부쩍 늘어나 고령화 시대의 새로운 가족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아무런 준비없이 직장 생활만 하다가 퇴직한 일부 남편들은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족의 외출을 막거나 자기 외출을 포기하면서 집에만 틀어 박히는 관계 단절 현상 까지 빚어지고 있다.

남편이 고위 공무원으로 퇴직한 50대 주부 손영희(가명)씨는 거의 매일 남편과 전투 아닌 전투를 벌인다고 말했다. 전투의 원인은 다름 아닌 손씨의 외출과 남편의 식사 문제. 자녀의 학업 뒷바라지를 어느 정도 마친 손씨는 자원봉사 활동, 취미 활동, 친구 만나기, 신앙 생활 등으로 주중 스케쥴이 타이트 하게 짜여있다. 자연히 토·일요일을 제외한 날은 집을 비운다. 자연히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은 거의 없다. 손씨는 남편이 퇴직하고 얼마간은 하루 세차례 남편의 끼니를 꼬박 챙겨 주었지만 이내 갑갑증이 도졌다.

집안을 벗어나 이미 바깥 재미(?)를 맛본 아내들이 퇴직한 남편 을 걸리적 거리는 존재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당신도 좀 나가라"고 권하는 손씨에게 남편은 도리어 "할 일없이 나가지 말라"고 브레이크를 걸면서 집안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한 것.

손씨만이 아니다. 적지 않은 주부들이 가정으로 되돌아온 남편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단법인 서라벌꽃예술협회에서도 서너명의 여성 이사들이 저녁 회의를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직장 대신 집을 지키고 있는 퇴직 남편 이 아내의 저녁 외출을 금했기 때문이다.

노인의 전화 를 운영하고 있는 불교사회복지회 이춘옥 사무국장은 "퇴직 이후 집에서 세끼밥을 다 먹으려니 눈치가 보인다. 아침, 저녁은 몰라도 점심까지 차려달라면 아내가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는 퇴직 남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고 전한다. 이씨는 대부분 퇴직 이후 생활 구상을 갖지 못한 남편들이 소일 거리를 제공하고 또래끼리 모여서 점심 식사를 해결할 아지트 만들기 에 혈안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일찌기 퇴직 이후 를 준비해온 사람들에게 남편의 퇴직은 제2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황금 찬스.

실제로 대구에서 은행 지점장을 역임했던 성진경(56)씨는 젊은 시절의 꿈인 세계 여행을 실천하고 있다. 퇴직한지 3년만에 성씨가 몽골 티벳을 비롯한 44개국을 여행하면서 경험을 넓히고 있다. 전적 교장인 강석교(77)씨는 퇴직 후 느낀 좌절감을 딛고 부부가 함께 자원 봉사 등 베푸는 삶 으로 방향을 틀면서 만족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남편이 퇴직하면 부부싸움이 잦아지는 가족과 서로를 위해주며 더욱 일치되는 가족으로 나뉜다"며 이인자 심리상담연구소장(053-655-1862)은 "당분간 아내가 직장을 떠난 남편이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자세가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한다.

"경제적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자세 못지 않게 심리적인 재활, 노후 정신 건강, 여가 생활, 인간 관계 맺기에 대한 준비를 병행해야 노후에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소장은 "더 많은 일을 하기를 요구하는 직장 생활을 적절히 조절, 우리 사회도 퇴직 후 생활을 준비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崔美和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