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은 왜 이다지 고달픈가. 무얼 그렇게 빌고 기원할 것이 많은지…
산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중 하나가 애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이다. 성황당 앞에서 무릎꿇고 밤을 지새는 아주머니, 냇가에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 할머니, 무속인을 불러 굿을 하는 아저씨…. 더욱이 신령스런 산이라는 지리산이 아닌가. 산중에는 복을 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히 무속(巫俗)의 본향이라 할 만 하다.
처음엔 솔직히 사람들이 왜 미신같은 것에 끌려 지리산을 어지럽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교회, 절에 가도 충분할 것을 굳이 산중으로 들어올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지리산 곳곳을 들여다 보면서 이런 생각은 다소 바뀌었다. 이들에겐 무속이 종교이기도 하겠지만 하나의 생활방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무엇에든 의지해 빌고 기도하는 것이 한국인의 생활방식이 아니겠는가. 더이상 기댈 곳 없고 뺏길 것 없는 민초들이야 말 할 것도 없다.
지리산 국립공원 매표소 입구에는 심심찮게 관리공단 직원과 입장객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다. 대개 기도를 하기위해 산으로 들어가는 입장객과 이를 막으려는 공단직원들과의 가벼운 다툼이다. 공단직원들은 입장객의 차량에 제기, 음식 등이 들어있는지 신경을 곤두 세운다고 했다.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하다 산불이 날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공단직원들이 감시의 눈길을 번뜩인다고 하지만 복을 비는 사람들의 애절함을 어찌 당할 수 있겠는가. 감시를 피해 산중에 숨어들어 판(?)을 벌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 주민 이정수(70)씨는 "몰래 텐트를 치고 기도를 하는 이, 바위틈새에 자면서 지성을 드리는 이, 별별 사람들이 다있다"고 했다.
여름 밤이면 개울가에는 수십개의 촛불이 이곳저곳에서 하늘거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다 공단직원들이 들이닥쳐 이들을 쫓아내고, 또다시 몰래 들어오고··. 한 직원은 이를 "쫓고 쫓기는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삶은 왜 이렇게 절박한가. 그것이 무엇이기에 목숨을 걸다시피 집착하고 있는지…. 한 동네노인의 얘기가 의문을 풀어줬다. 그는 "이곳에서 수십년간 지켜봤지만 형편이 좋아 들어오는 사람은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면서 "한마디로 불쌍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9대 독자의 건강을 위해, 부도난 후 재기를 위해, 아픈 몸이 낫길 바라며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바위 밑에 앉아 지성을 드린다는 것. 그만큼 애절한 사연이 지리산 골골이 배어있다.
백무동 매표소를 지나면 하천너머 산중턱에 고불사라는 자그마한 절이 있다. 3년전만 해도 '할매당'이라는 당집이 있던 곳이다. 수백년전부터 이곳의 '할매'에게 소원을 빌어 성취를 이룬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찰옆 바위틈에 기거하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제주도에서 카센터를 하다 부도가 난 후 이곳에서 3주째 텐트를 치고 지성을 받치는 50대 남자, 아픈 아들을 위해 며칠째 기도하는 서울에서 온 가족도 있었다. 그중 병색이 완연한 30대 남자. 그는 "몸이 아파 얼마 벌어놓지 않은 돈을 다쓰고나니 가정도 깨졌다"면서 "이젠 갈 곳도 없다"고 서글퍼했다. 그는 자신의 아픈 부위를 보여주면서 "오대산을 거쳐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이곳까지 왔다"고 한후 더이상 얘기할 기력도 없다고 한다. 주지인 정현우(37)스님은 "부처님도량 옆에서 기도를 한다는게 아주 어색하지만 고통때문에 찾아오는 이들을 무작정 막을 수도 없다"며 난감해했다.
고통스런 사연은 잠시 접어두고 색다른 얘기를 하나 해보자. 함양군 휴천면 대종교 마적 천진전에서 '할아버지' 공부를 하고 있는 박철우(48)씨. 박씨는 "이 부근에는 무속인들이 접근을 못한다"는 얘기를 꺼냈다. 부근에 사는 무속인들은 단군을 모시는 천진전에 근접을 못할 뿐 아니라 '할아버지'공부를 하는 자신만 봐도 피해 간다고 했다. 무속인들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한 고통을 느낀다는 것.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의 저자 최준식(이화여대·한국학과)교수는 "한민족은 역사를 무당과 같이 시작했고 아직까지도 같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세운 단군은 당시의 제정일치사회에서 무당이었을 것이다"고 했다. 최교수와 박씨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단군이 무당중에서 '굉장히 높은 어른'인 만큼 보통 무당이 두려워하고 피해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즉흥적으로 떠올랐다.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의 용유담은 연중 굿판이 벌어지는 곳이다. 지리산의 영기가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국립공원내에 들어갈수 없는 무속인들이 불가피하게 택하는 장소다. 인근의 '용당'이라는 민박집에는 무속에 입문하려는 사람, 굿판을 벌이거나 기도하러 온 무속인 들로 가득했다.
경남 거창에서 약명도사로 불린다는 무속인 노검용(48)씨. 자신을 박수무당이라고 소개한 그는 서너차례 신기(神氣)를 거부하다 결국 3년전에 이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자신의 가요앨범 취입과 자녀의 대학입학을 기원하는 40대 후반의 여성을 위해 신명나게 굿판을 벌였다. 삼지창으로 돼지머리를 세우고, 긴칼(월도)위에 술잔을 올려놓고 빙빙 돌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2시간이 흘러갔다.
저너머 지리산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인간들이 신령을 부르고 복을 빌며 법석을 떨지만 산은 말이 없다.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켜볼 뿐.
글 : 朴炳宣기자·사진 : 鄭又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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