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에서
서쪽으로 지는 해를 말없이 바라보는 일이
사람이 나서 그냥 덧없이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대지의 가슴에 안겨주는 일이라는 믿음을 준다
사랑하는 일과
철저히 자신을 지우는 일은
저녁 식당에서 묵묵히 밥알을 씹는 일만은 아니다
우리가 관습과 싸우거나
혹은 바퀴벌레 때문에 지치고 외로울 때
경주 남산 산자락 서정적인 풀밭에 앉아
5월의 낙조를 바라보는 일처럼 세상도 풀밭처럼 서정적이지는 않다
목이 부러져 달아난 애기부처나
귀퉁이가 절반 이상 잘려나간 석탑의 오랜 내력이
라일락 향기처럼 우리에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해도
생의 환희를 결코 약속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경주 남산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일은
해 떨어지기 전 농부가 소를 몰고
터벅터벅 논둑길을 가는 것과 같은
인생에 대한 그런 그림 한 폭쯤은 기꺼이 선사해 주는 것이다.
-'당대비평' 가을호에서
▲계명대 대학원졸(문학박사)
▲'창작과 비평' 신작시집으로 등단(84)
▲시집 '푸른 별'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평론집 '민족문학논쟁사 연구' '지역·현실·인간 그리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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