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어미와 그녀가 데리고 온 딸에게 온갖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던 소녀가 어느 날 마법에 걸려 화려한 성장을 하고 궁중무도회에 나가게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소녀는 마법이 풀어지는 자정 직전에 허둥지둥 무도회장을 빠져 나오느라 신고 있던 유리 구두 한 짝을 그만 잃어버리고 만다. 이 구두가 인연이 되어 천덕꾸러기 소녀는 후일 왕세자와 결혼하여 하루아침에 권좌에 오르는 신분으로 변신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프랑스의 샤를르 펠로가 옛날 이야기를 글로 엮어 유명해진 동화 '신데렐라'라는 것을 모르는 여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콩쥐팥쥐'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야기가 만들어진 시대나 나라가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주인공은 마치 동일한 소녀처럼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얼굴이 예쁘고 마음씨가 착하며 천성이 부지런하고 거기다가 남보다 뛰어난 재기(才氣)까지 타고 난다. 이만하면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여자로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살 수 있을 만하다.
그러나 그들은 또 하나같이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과 모멸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한다. 고난을 헤쳐나가는 동안 그들이 타고난 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고, 종내는 예기치 못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도 비슷비슷하다.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펠로의 이야기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불행하고 보잘 것 없던 한 소녀가 이룬 꿈을 선망하고, 그 정도를 지나쳐 자신도 그 소녀가 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 곁에서도 심심찮게 신데렐라의 출연은 계속되고 있다. 며칠전에 막을 내린 '고급옷 로비 청문회' 현장에서다.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분노는 접어두고, 증인으로 불려나온 한 여인에게서 '한국형 신데렐라'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의 남 다른 개인사는 솔직히 호피 반코트에 모아졌던 극히 여성적인 관심과 호기심을 잠시 밀쳐 두기에 충분히 감동적이었다면 지나친 감상이 될까.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 군데군데 단편적으로 소개된 기사나 무성한 소문을 대충 맞추어 보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펠로의 신데렐라는 어느 날 갑자기 행운을 얻었다면, 청문회의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신데렐라가 된 여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가 낡은 자켓을 들어 보이며 흘리는 눈물이 '악어의 눈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데도 그만한 잘못이 있다. 우리가 심청을 효도의 완성으로 보는 것처럼, 서양에서는 신데렐라를 귀부인의 미덕의 상징으로 이야기되고 있음을 그가 몰랐다는 것이다. 펠로의 신데렐라가 미처 구두 한짝을 챙기지 못하면서도 약속을 지켰던 반면, 그는 황홀한 권력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결과가 되고 말았다. 미인에 재기가 무슨 소용인가. 음모와 부정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허영에 눈이 어두운 여자들이 굴러 떨어지는 정해진 코스라고 했다.
짐승이 남긴 털가죽을 걸치고 그들은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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