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여인천하 거짓천하

입력 1999-08-26 14:54:00

연일 진풍경을 연출하면서 마침내는 한다하는 여인네 4명을 떼거지로 불러 모은 국회사상 초유의 대질신문이란 것을 마지막으로 옷 로비 청문회는 막을 내렸다.국회의 숱한 상임위중 평소에도 헛기침이 유난히 많이 들렸던 법사위의 근엄했던 회의장을 사흘내리 여인네들의 방향(芳香)으로 가득 채웠으니 대부분이 법조인 출신들인 법사위원들이 처음부터 적지 않게 당황한 모양이다.

첫날 TV에 비친 의원들의 경색됐던 표정이 이를 말해줬다.

##실패로 끝난 진실 규명

결국 사흘에 걸쳐 간단없이 나타났던 여인네들의 위장된 하소연, 황당무계한 눈물, 교묘한 거짓말들의 높은 벽에 가려 그 목적도 엄청났던 '실체적 진실의 규명'은 끝내 이루지 못한 비원이었다.

의원들의 준비, 성의부족으로 밖에 달리 더 할말이 없다. 수사기록 등 초보적인 신문자료의 제출조차 거부한 정부를 탓하지만 막말로 해서 그건 다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유치하고 때로 혐오스럽기까지 했던 여당측의 특정 증인 싸고 돌기, 야당측의 준비 부족에 더 큰 원인이 있었다.

달리 표현하면 한 쪽은 아예 '하지 말자'는 식이었고 다른 한쪽은 '시시하게 하자'는 식에 다름아니었다. 청문회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남탓이 크게 먹혀들 리가 없다.

특정 증인을 싸고 돌기 위해 사자후를 토하는 여성의원, 증인의 해명을 위해 자신의 신문시간까지 양보하는 넋빠진 여당의원들의 실상을 국민들에 다 보여주고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또 증인으로부터 '자료는 의원님들이 열심히 뛰어 확보해야지 증인한테 받으려 하면 어떻게 합니까'라는 훈계를 받은 야당의원의 심경은 모르긴 몰라도 참담했을게다.

증인들이 자신의 입장을 강조할때 어김없이 하나님.성경이 등장한 것은 가증스러운 특징중의 하나였다. 어느 한 쪽은 거짓이라는 사실은 상황의 귀결임에도 어느 쪽 없이 '성경에 손을 얹고…' 어쩌구 했으니 그들에겐 성경책이 무슨 손바닥 받침대였던 모양이다.

또 버텨봐도 자기들 말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을땐 눈물이나 찍어누르는 시늉은 증인들이 감추고 있는 숱한 위선중의 한 부분이었다. 그 눈물과 자신들은 고관들 부인이랍시고 떼거지로 고급의상실.호텔.쇼장등지로 몰려 다닐때 퇴출.감봉으로 돌아서서 흘렸던 서민 아주머니들의 뜨거운 눈물과는 어떻게 다른지 생각이나 해보고 방자하게 흘렸는지 실로 가소로운 일이다.

15년이나 입었다는 옷을 들고나와 흔들어 보이는 유치함, 또 그것을 제대로 한번 펴보이라고 재촉하는 의원이 공존한 곳이 대한민국 국회였음을 최소한 TV시청자들은 다 봤다. '아이들에게 쇠고기도 제대로 못먹이고…', '김치도 못 담갔으며…'라는 마치 연극의 대사같은 구절은 아무에게나 다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다. 더구나 자신이 사는 집의 평수도 제대로 모르는 여자가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청문회 사흘동안 의원이나 증인의 입에서 무슨 라스포사, 페라가모, 나나부티끄, 앙드레김하는 설익은 말들이 나오더니 마침내 재킷, 망또, 앙상블 어쩌구할때는 서민 아낙들은 숫제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혀나 제대로 돌아가야 남편들에게 사달라거나 빌려달라고나 할것 아닌가. 그들은 수십, 수백만원짜리 옷을 걸치고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특급호텔에서 식사하고 '나훈아쇼'나 보러다니면서도 입으로는 예외없이 봉사활동을 내세웠다.

##시민 가슴만 헤집어

누가 그들에게 진심어린 봉사를 해주갈 원했을까. 오히려 그들, 불행했던 이들은 고관부인들이 봉사를 내세우며 자신들을 대리만족의 대상으로 여기고자 한 오만을 먼저 꿰뚫어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국회는 청문회를 안 열었으면 모르되 이왕 연 이상, 무슨 억하심정으로 밝히라는 진실에는 접근도 못한채 가진 것없고 무력한 국민들의 얄팍한 가슴만 헤집어 놓는지 모를 일이다.

국회는 이 청문회를 계기로 뭔가를 확실하게 밝혀 낼 자신이 있을때만 특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사실 하나쯤은 얻었을 것이다. 숱한 시민들로부터 '진실을 밝히기 위함인지, 되레 덮으려는 것인지'라는 항변은 이번에 그치는 것으로 족하다. 더구나 증인을 넷씩이나 불러 대질을 시키고도 별무소득이라면 안한 것보다 나을 것 하나없다. 신물나는 증인 감싸기, 밑도 끝도 없는 호통치기 역시 이번으로 끝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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