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8)고층 건물

입력 1999-08-24 14:00:00

고층건물은 현대도시의 상징이다. 수많은 도시인구가 고층 아파트에서 거주하거나 고층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고층건물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크게 두가지로 상반된 견해를 보여준다.

하나는 과밀화에 따른 번잡함과 범죄에 대한 불안감, 지면으로부터의 이탈에 따른 불편함을 주장하는 부정적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시원한 전망, 여유있는 외부공간, 우수한 시설 등을 선호하는 긍정적 견해이다.

도시 고층화의 장·단점을 단순하게 대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현대도시에서 건물의 고층화는 불가피하다는 점이며,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키워가야 한다는 점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우선한 한국적 정서에서 볼 때 고층건물은 비교적 생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21세기에는 더욱 많은 도시민들이 고층건물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고층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늘리고, 고층건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고층화는 지속적으로 추구돼 왔으며, 그 이면에는 항상 상징성과 효율성의 논리가 깔려 있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 뿐 아니라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밋, 중세의 대규모 고딕성당은 하늘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대상이었다. 동시에 이러한 건물이나 구조물은 그 지역의 중심적인 장소가 됐으며, 대표성을 띠는 랜드마크의 역할을 수행했다.

근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도시집중화 현상은 지가 급등을 야기시켰고 토지에 대한 효율성을 최대화하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최대한의 주거공간과 업무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근대적 고층건물이 뉴욕과 시카고와 같은 미국의 대도시에서 건립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도시들은 경쟁적으로 고층화를 추진했으며, 1970년대부터는 아시아 각국의 주요 도시들도 이러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고층화의 경쟁에서 다시 한번 상징성은 효율성을 초월하는 우선적인 조건이 됐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영예는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에 위치한 페트로나스 타워스가 차지하고 있다. 상하이(上海)와 같은 아시아의 다른 도시에서 더 높은 건물이 건립되고 있고, 마천루의 도시로서 자존심을 지니고 있었던 뉴욕과 시카고에서 초고층 건물을 건립하기 위한 계획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는 것도 효율성보다는 고층건물이 갖고 있는 상징성의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자주 지적되고 있는 고층화의 문제점은 기본적으로 고층건물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과 효율성의 본질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한 결과이다. 고층건물은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물로서 독창적이면서도 친근한 디자인을 가져야함에도 불구, 대부분의 경우 경제적인 이유로 단조롭고 비인간적인 거대한 덩어리가 되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토지의 효율적인 사용이라는 것 역시 사용공간의 적층화(積層化)를 통해 가로의 녹지공간을 최대화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사용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도시에는 부정적인 존재가 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층건물의 상징성은 원거리에서 볼 때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며, 근거리에서는 보행자나 사용자들의 시각적인 대상이 된다. 따라서 고층건물과 인접한 도시의 가로환경은 고층건물과 외부공간과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서만 개선될 수 있다. 충분히 확보된 아트리움, 선큰가든(지하로 움푹 빠져 내려간 공간으로 지하층과는 다름), 분수광장 등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층건물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고층건물은 주로 복합용도의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으며, 환경친화적인 디자인을 주요 이슈로 삼고 있다. 주거와 상가와 사무소를 하나의 고층건물에 포함시켜 24시간 사용될 수 있으며, 각 지역의 기후와 풍토를 감안하여 건물을 디자인하는 이러한 경향은 바로 고층건물이 도시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동시에 도시의 일부분으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건축가들과 학자들은 더욱 아름답고 편리하며 튼튼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도시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는 고층건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종욱(영남대 교수·건축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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