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사진 하나를 기억한다.
87년 여름. 6.29 선언으로 시위는 끝이 나고 담벽의 스프레이구호를 지우느라 구청 공무원들이 애를 먹던 그 무렵이다.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시위군중과 커다란 태극기를 배경으로 혼자 절규하며 달려가는 청년의 모습. 웃통을 벗어 던진채 양팔을 쳐들고 뛰어가는 모습이 영화 '플래툰'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하던 앨리아스상사의 모습과 오버랩돼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뒤늦게 보도된 이 사진은 당시 6월 항쟁을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처절하게 얘기하고 있다.
보도 사진가는 '순간'을 '영원'에 담는 '시대의 전사(戰士)'다.
그 순간을 위해 그들은 전쟁터 한가운데로 몸을 던진다. 유명한 종군사진가 로버트 카파도 그랬고, 2차 대전을 휴머니스트 시각에서 본 유진 스미스, 한국전을 종군한 데이비드 더글라스 던컨도 그랬다.
◈포토 저널리즘의 노벨상
퓰리처상 사진부문은 포토 저널리즘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순도 100%'라는 엄격한 선정기준, 해마다 2천대 1의 높은 경쟁률로 42년 이후 57년간 최고의 명성과 권위를 더해오고 있는 상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을 한자리에 모은 '죽음으로 남긴 20세기의 증언-퓰리처상 사진대전'이 어제(20일)부터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달음질쳐온 20세기, 그 세계 역사 현장을 사진으로 반추해 보는 기회다.
첫날,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었다. 특히 자녀와 메모를 해가면서 관람하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관람객의 발길은 주로 유명한 작품에 오래 머물렀다. 72년 네이팜탄을 맞아 불바다가 된 마을을 등지고 발가벗은 채 울며 가는 베트남 소녀 사진과, 굶주린 아이를 노리는 독수리를 통해 수단의 기아를 고발했던 케빈 카터(수상 3개월후 자살)의 사진 등.
◈뒤통수만 찍은 사진 두장
그러나 130여점 중에서 특이한 작품이 둘 있었다.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면서도 이상하게 인물의 뒤통수만 보여주는 사진이다. 그래서 그런지 관람객들의 시선도 끌지 못하고 있었다. "뭐 이런 사진에도 퓰리처상을 줬나?"는 식이다.
하나는 49년 퓰리처상을 받은 나타니엘 파인의 '베이브 루스'. 48년 6월 미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던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은퇴 장면을 기록한 사진이다.그의 전 인생을 걸었던 양키스 스타디움. 꾸부정한 모습으로 왼손에 모자를, 오른손에는 배트를 쥐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다이 작품은 베이브 루스의 얼굴이 아닌 미국인들이 그렇게 열광했던 백넘버 3번을 보여줌으로써 사진이 현재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는 62년 수상한 '캠프 데이비드에서 케네디와 아이젠하워'. 전.현직 대통령이 뒷짐을 지고 오두막집으로 걸어 올라가는 뒷모습만 담은 작품이다.
61년 쿠바 픽스만 공격이 실패로 끝나자 케네디가 함께 고민하기 위해 전임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를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한 자리. '두 거인'이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한 후 뒤돌아서 가는 길이다. 자신의 장비 가방을 들려고 무릎을 꿇었던 포토 저널리스트 폴 베시스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고뇌하는 두 거인'의 이미지가 순간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셔터를 눌러댔다고 한다. 결국 만면에 웃을 띤 모습을 담았던 사진들은 모두 탈락하고 뒷모습을 담은 이 사진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보도는 사실보다 진실이 우선돼야 한다'는 말이 있다. 독수리로부터 아이를 먼저 구해야 했다는 비난에 자살까지 한 케빈 카터. 그가 고민했던 것도 진실에 대한 갈등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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