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기소 예상된 무죄

입력 1999-08-20 15:21:00

검찰이 지난 97년말 환란을 초래한 책임을 물어 강경식(姜慶植) 전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 전경제수석에 대해 국가공무원법상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한데 대해 법원이 20일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환란공판을 놓고 법조계 주변에서 "검찰이 두사람을 사법처리하려 한 것은 IMF사태 이후 끓어오르는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무리하게 기소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점에 비춰볼 때 이번 환란 무죄 선고는 어느 정도 예상돼왔으나 "그럼 IMF 사태를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냐"는 의문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강.김씨의 변호인단은 그간 재판과정에서 "정책판단 잘못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처음"이라며 "검찰의 기소는 공소권 남용"이라고 주장해왔다.

법원은 두사람의 직무유기 혐의와 관련, "피고인들이 97년 당시 검찰 주장대로 IMF행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축소.은폐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법원 주변에서는 이같은 판단이 "장기적인 법치주의의 안정을 위해 당장의 정치적인 요구를 배제한 것이 아니냐"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공판 과정의 쟁점이 됐던 '97년 10월29일 보고'와 관련, 강씨가 당시 외환위기 급진전 가능성 등을 보고하지 않은 점을 검찰이 직무유기로 본데 반해 재판부는 "보고 당시의 객관적 상황 등을 살펴볼 때 피고인이 외환위기 급진전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당시 외환시장 중단 사태를 외환시장 마비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부분도 직무유기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쟁점이었던 97년 당시 정부의 IMF 구제금융 요청 불가피 판단 시점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강씨나 변호인단의 주장대로 97년 11월 13일로 결론을 내리면서"11월10일 보고 당시까지는 피고인이나 재경원, 한국은행 등 모든 정부부처가 IMF행을 다만 선택가능한 유력한 방안으로 고려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강.김씨가 '11월 8일 보고'나 '11월 10일 보고'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IMF행이 불가피하다"는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직무유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강 전 부총리가 후임 임창열 부총리에게 IMF행 결정을 제대로 인계하지 않았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임 부총리도 IMF행 결정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강 전 부총리로서는 업무인수.인계 관행으로 볼 때 임부총리에게 직접 IMF행 발표 사실을 인계하지 않았다고 해서 직무유기로 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환란 책임과 관련된 모든 쟁점에 대해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전혀 인용하지 않고, 강.김씨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그간 재판과정에서 검찰이 다소 감정적인 논리 전개로 일관한데 비해 변호인단이 '죄형법정주의의 안정성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차분하게 재판을 리드한 것도 강.김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