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10일 김대중 대통령은 방일(訪日)귀국기자회견에서 일본의 과거사에대한 사죄를 문서로 남겼다는 것과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경제문제의 협력합의를 일본방문 성과로 설명했다. 일본의 사죄에 대해선 "우리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귀중한 희생자들에 대해서 이 대목을 결말지으면서 참 그 분들이 이것으로써 편히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고 할만큼 만족감을 나타냈다. 또 경제협력 합의에 대해선 "30억달러를 2%선의 저리로 우리가 자유롭게 쓸 수 있게됐고, 어업문제도 일본에서 굉장히 큰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기술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전하는 문제라든지, 우리나라와의 무역, 투자의 확대, 이런 등등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앞으로 협력해 나가겠다는 합의를 보았습니다"고 낙관적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방일후 1년도 못된 금년 광복절까지 그같은 사죄와 협력이 얼마나 겉치레였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면 우리가 너무 순진해서일까. 결국 이전부터 되풀이해왔던 과거사문제.경제협력문제에대한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자세를 다시 확인했을 따름이다.◈대일문제의 쳇바퀴
우리국회가 특별검사제와 총리해임건의안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동안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인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일본의 정식 국기-국가로 법적 공인을 받았다. 그리고 한반도주변의 비상사태에 일본이 미군지원을 명분으로 군사개입을 할 수 있는 주변사태법이 통과됨으로써 일본의 대외적 군사역할이 가능하게됐고, 일본재무장을 막는 족쇄역할을 해온 헌법조항의 수정을 위한 헌법조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20세기 마지막 광복절이고 일본에게는 마지막 종전기념일인 지난 8월15일에는 2차대전전범이 안치된 야스쿠니신사엔 8명의 현직각료가 참배했고 도쿄거리는 우익의 군가소리로 가득찼다. 지금 시점에서 일본이 문서로 남긴 우리에대한 사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본의 사죄는 무엇
경제협력의 합의도 우리에게 자금지원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들에게 더 큰 경제적 실리가 돌아갔음은 과거 한일협정의 결과와 마찬가지다. 수입처 다변화 해제이후 급속한 일본상품의 한국시장 잠식으로 대일무역적자가 더욱 늘고 새로운 어업협정은 어장확보 뿐아니라 독도주변의 EEZ획정에서 일본이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게됐다. 30억달러 지원은 사실상 보리밥 미끼로 잉어를 낚은 격이랄까.
그러나 현정부의 한.일관계가 빚은 오늘의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패전의 그날부터 전전(戰前)의 패권주의적 야욕을 버리지 않은 일본이 꾸준하게 정치대국화와 군사대국화의 길을 걸어오는 과정에 불거진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1945년 12월부터 1년간 일본에 머물면서 10.1사건무렵 대구를 취재한바 있는 미국 시카고 선지의 마크 게인 기자는 자신의 저서 '일본 일기'에서 일본의 재무장은 패전직후부터 시작되었음을 증언하고있다. '46년 11월 14일 동경'일기에서 "전쟁수행 기구의 해체과정은 속임수에 불과했다. 군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입안가들은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육군해산위원회와 해군해산위원회는 전전의 참모본부의 축소판이며, 그것은 일본이 항복한 그날부터 군사적인 재생을 계획해왔었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고 기록하면서 이들과 관련한 인적구성을 증거로 들었다.
◈해체과정은 속임수
20세기 마지막 광복절을 맞은 지금도 우리는 아직 분단으로 남아 주변4강과 외교관계를 맺고있으나 우리의 위상은 여전히 불안하다. 그런 가운데 미국이 냉전종식후 동북아 질서재편과 관련,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증대시키고 있는 것은 우리에겐 매우 당혹스럽다. 아직도 군국우익의 국가이념을 버리지않고있는 일본의 군사적 역할은 일제침략을 겪은 우리에겐 분명히 두려운 일이다. 통일의 절박성을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의 구호속에 묻혀져가는 민족과 국가의 위상문제, 정체성(正體性)문제도 이제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 새 천년의 첫 이정표는 그러한 통일과 정체성 회복의 정신을 살리는 제2광복이 돼야할 것이다. 지금 대구.경북 광복회가 추진하고있는 대구.경북항일 독립 기념탑건립은 제2광복운동의 횃불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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