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입력 1999-08-17 14:07:00

16세기 후반 유럽인들은 첫번째 해상탐험의 시대를 마쳤다. 상인들과 전교사들은 새로운 시장, 새로운 영혼의 수확을 위해 동쪽으로 항해를 계속했다.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간 그들의 목적지는 극동지역. 이 여행자들 가운데 뛰어난 한 인물이 있었다. 예수회 사제인 마테오 리치(1552~1610). 16세기말 세계지도인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제작하고 중국에 그리스도교를 전파, 동서양의 문화교류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예일대 석좌교수)가 쓴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산 펴냄)은 그의 생애를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복원한 책이다.고국 이탈리아와 인도, 중국에서의 마테오 리치의 삶과 행적을 풍부하고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명대 중국과 반종교개혁기 유럽을 대비시켜 지적·사회적·군사적·해상무역의 세계사를 펼쳐 보이고 있다.

16세기 서양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 이슬람 세력과의 대결 등으로 전쟁과 학살이 끊이지 않았고, 세계의 바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양분하고 있었다. 또 동양에서는 조선과 일본·중국이 임진왜란이라는 대전란에 휩싸여 있었다. 지구 반바퀴나 돌아 마카오에 도착한 마테오 리치에게 16세기 후반 중국사회와 동양 문화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교와 가장 유사한 교의를 가진 중국의 유교에 주목, 스스로 유학자의 옷을 입고 유학자들과 친분을 맺었다. 당시 중국에 전파된 이슬람교,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景敎), 유대교 등 서양의 종교가 중국에 큰 거부감 없이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간파한 그는 동서양 종교와 문화의 융합 가능성을 모색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 전한 서양의 문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자세하게 기술하는 한편 중국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인생역정을 더듬어 간다. 16세기 비단무역과 은의 유통 등 경제 이야기와 당시 마테오 리치가 어떻게 먹고 살았는가라는 의식주 문제도 다룬다. 중국 관리나 지식인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대단히 효과적임을 인식한 그는 황제에게 많은 선물을 바치고 베이징에 정착할 수 있었다. 또 16세기 동서양을 막론하고 만연했던 매춘의 실태도 적나라하게 파헤쳐 눈길을 끈다.

저자 스펜스는 마테오 리치가 중국인에게 기억술을 가르치기 위해 쓴 책 '기법'(記法)에 기초해 무(武)·요(要)·이(利)·호(好) 등 네 개의 이미지와 성경에 나오는 네 장의 그림을 교차시키면서 16세기 동서양이라는 대조적인 시공간에 대한 기억을 철저히 복원하고자 했다. 책 제목도 이를 따 '기억의 궁전'이라고 붙였다.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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