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남기행-(32) 은둔의 고장 지리산(중)

입력 1999-08-16 14:00:00

산은 너그럽다. 산속의 은둔자들도 대개 그렇다. 비록 처음 만날 때는 어렵지만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지리산에서 은둔자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을 등진 채 산중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외인과 접촉하려 하겠는가. 그들로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데 방해되는 사람들을 꺼려하는게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어렵게 수소문을 해 찾아갔다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고, 겨우 집안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은둔자의 냉랭한 모습에 질려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래도 기억에 남을 만한 몇몇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취재진이 잔뜩 성의를 보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산길을 몇시간씩 걸으며 '엄청난 시련(?)'을 겪고 찾아온 듯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비에 흠뻑 젖은 채 오랜시간 산중을 헤매지 않고선 은둔자들의 마음을 열기 어려웠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의 지리산 중턱에 사는 모(40)씨와의 만남도 그러했다. 승용차가 들어갈 수 있는 끝동네에서 산길로 1시간여동안 걸었다. 가파른 비탈을 오르다 숨이 턱밑에까지 차오를 때, 대나무밭에 반쯤 가린 오두막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사람이 찾아왔건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고 앞뜰에 심어놓은 고추만 따고 있었다. 몇차례 인사를 건넸는데도 별 말이 없다. 무표정한 검은 얼굴, 허리까지 치렁치렁 흘러내린 머리카락, 근육만 있는 단단한 체격…. 역시 '도인'의 풍모는 뭔가 다르다.

30분 가까이 지났을까. 그는 "하늘의 도리를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인간을 계도하겠는가"라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24세때 이미 '도사'소리를 들었고 한때는 전국에 수백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고 했다.

공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해 7년전에 부인과 함께 산중에 들어왔다고 한다. 전기도 전화도 없는 이곳에서 밤에는 공부를 하고, 낮에는 수박, 고추 등을 심고 닭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단전호흡, 명상, 참선을 비롯해 무술, 차력술까지 도(道)에 관한 한 안해본 것이 없습니다" 그는 4시간 동안 인간의 도에서 하늘의 도까지 두루 설명했다.

속인의 짧은 지식으론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가 별로 없었다. 실례되는 표현이겠지만 황당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언제가 될른지 알 순 없지만 공부를 마치면 속세로 내려가 중생을 계도할 것이라고 했다.

부인과 함께 산다고 들었는데 보이지 않아 물어봤다. 솔직히 '은둔자의 부인'이라는 호기심이 인 탓이다. "잠시 어디로 갔다"고 했다. "어떻게 결혼했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는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도인도 사랑에는 약한 모양. 부인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문가의 규수였다고 한다. 부인은 제자 중의 한사람이었는데 끈질긴 구애를 받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다는 것이다.

정신없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룻밤 자면서 밤새 도에 관한 얘기를 더 나누자는 그의 요청을 뿌리치고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도 은둔자들이 많다. 산길을 걷다 큰 사찰같은 집 부근에서 벌을 잡고 있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몇마디 물어보는데 단번에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인심이 좋은 할머니. 알고보니 그 할머니가 전국에서 이름높은 박보살(63)이었다.

신통한 처녀점쟁이. 지리산에 취재하러 나서기 전부터 듣던 이름이었다. 70년대엔 대구 만촌동에서 점집을 했다고 한다. 몇년전만 해도 조용한 산중에는 점보러오는 사람들과 그의 제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가 3년전에 중풍을 앓아 몸져 눕고 나서부터 인적이 끊겼다고 했다.

"몇년전엔 토굴이나 움막에서 도를 닦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 거의 우리집 밥을 먹곤 했는데 내가 아프면서 모두 떠났어" 박보살은 이제 건강을 회복했지만 점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제자도 받지 않고 여생을 조용하게 보낼 것이라고 한다. 푸들강아지에게 쉴새없이 뽀뽀를 퍼붓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냥 좋아보였다.

산속 오두막엔 동양철학을 하는 은둔자가 있었다. 인근에 주차해 있는 볼보 왜건. 은둔자가 웬 외제차? 집앞엔 차단기 역할을 하는 대나무 하나가 가로로 걸려있고 '부모형제를 죽이고 입산한 사람이니 함부로 들어오면 죽일 수 있다'는 끔찍한 경고문이 걸려 있었다.

슬며시 겁이 나기도 하고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몇차례 집주인을 불러보았다. "할 얘기 없다"는 주인의 목소리와 함께 도베르만인 듯한 시커먼 사냥개 한마리가 쫓아나왔다. 그냥 쫓겨 나올 수밖에. 산중에서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특이한 경험을 한 셈이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의 대종교 마적 천진전. 지금은 단군을 모시는 천진전이 있지만 1천년전 마적도사가 도를 깨달았다는 신령스런 곳이다. 비오는 날 산중턱을 걸어 올라가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힘겹게 찾은 천진전에서 기(氣)공부를 하는 박철우(48), 박윤화(50)부부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들은 무척이나 표정이 밝고 쾌활했다. '할아버지 공부'를 한다는 이들 부부는 "밤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천부경을 읽고 가부좌를 튼채 자연과 하나되는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에서 중장비 일을 하면서 신기(神氣)를 느껴 전국을 헤매던 박씨는 6년전 단군의 초상을 보고 자신이 살아갈 바를 깨달았다 한다.

지난해 10월 이곳에 오면서 스승을 모시고 본격적인 기공부를 시작했다는 것. "누가 산중에 살면 외롭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곳이 바로 천국이고 극락입니다. 평생 이곳에 살 작정이에요. 공부에 성취를 이루면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요"

은자(隱者)들의 삶은 행복해 보였다. 가장 큰 번뇌를 안겨주는 인간관계를 매정하게 끊고 왔기 때문일까. 하루 하루의 성취감에 재미를 느껴서 일까. 사람이란 무슨일이든 그저 자신에게 전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제일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글:朴炳宣기자

사진:鄭又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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