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동화' 새 장르로 자리 굳혀

입력 1999-08-16 14:11:00

'어른을 위한 동화'는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고, 자신과 세계가 나누는 대화가 담겨 있다. 주변 사물의 의인화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을 발견하는 지혜와 깨달음의 눈을 열어 주는 힘은 성인동화의 미덕이다. 점점 자신의 속내와 꿈, 희망 등을 털어 놓을 대상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 그들의 일상을 시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풀어낸 성인동화는 그냥 읽어내려가는 글이라기보다 자기와 세계를 되돌아 보고, 곰곰히 생각케 하는 삽화같다.

성인동화가 몇년새 새로운 장르로 탄탄한 입지를 굳히면서 출판가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소설가 이병천씨의 '세상이 앉은 의자'(문학동네)와 김재진씨의 '엄마의 나무'(샘터), 유고작가 다닐로 키쉬의 '안디의 벨벳 앨범'(현대문학), 러시아작가 에프라임 세벨라의 '앞집에 살던 친구 베렐레'(거름), 이탈로 칼비노 등 유럽작가들의 짧은 성인동화를 묶은 '달은 다 알고 있지'(문예당) 등 국내외 작가들의 성인동화가 봇물을 이룰 만큼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세상이 앉은 의자'는 변두리 역 대합실을 지키고 있는 한 느릅나무 의자에 담긴 갖가지 사연을 들려준다. 회사부도로 실의에 빠진 아버지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는 소녀, 새를 팔면서 야간대학을 꿈꾸는 청년, 신혼여행중 남편과 다투고 눈물을 흘리는 신부, 사업차 먼 이국땅에 온 한 외국여인, 가발공장에서 일하는 아저씨….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풍요로운 삶이란 소유나 지배가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작고 사소한 존재들과의 대화에서 비롯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섬아이 구노와 선생님·시인이 보여주는 진정한 삶의 모습을 통해 왜 사는지, 진실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엄마의 나무'나 삶과 사랑의 상처로 가슴앓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달빛과의 대화인 '달은 다 알고 있지'는 마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 감미롭다. 또 전쟁의 참화속에서 펼쳐지는 아름답고 슬픈 유년의 나날을 기록한 유고 출신 다닐로 키쉬의 '안디의 벨벳 앨범'은 소년 안드레아스가 바라보고 느낀 세상이야기다.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더 큰 눈을 가진 소년, 어른들이 듣지 못하는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더 밝은 귀를 가진 안디를 통해 무감각해진 어른의 마음을 열어준다. '앞집에 살던 친구 베렐레'도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준 한 친구의 이야기다. 장난꾸러기 소년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사회주의 체제하의 소련 생활상을 풍자하기도 한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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