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54주년'

입력 1999-08-16 14:49:00

15일인 어제는 다같이 맞은 54주년. 우리는 '광복'. 일본은 '종전'. 함께 반세기를 지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분단에 따른 대립의 민족사를 지닌채 이미 거대국가가 되어버린 그 일본을 이웃하고 있을 뿐이다. 급부상하는 중국, 잠재력의 러시아가 지척간이며 막대한 외국돈의 유입으로 내일을 알지 못한다. 곧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답(答)'이 없다. 왜?

▲ 이날, 엇비슷한 시각.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내각제 공약을 지키지못한데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비전없는 케케묵은 정치.경제개혁만을 내놓을 즈음 도쿄의 야스쿠니(靖國)신사에서는 일본정부의 각료들을 비롯한 수천명이 신사를 참배했다. 이들 중에는 2차대전 당시의 복장을 한 참배객들도 있었다. 불과 며칠전 국기와 국가의 공식화를 선언한 일본이다. 이게 양쪽나라 54주년의 현실감이다.

▲ 과거의 만행을 결코 사과하지 않고도 기어코 대국으로 발돋움한 일본이다. 얼마나 극일을 외쳤는가. 그동안 과연 실속있는 극일의 구체적 내용으로 어떤것들이 나왔나. 중국이 일본에 사과를 강력히 요구했을때 우리는? 동서냉전의 종식에 따른 새로운 세계질서의 개편을 단순히 미국과의 관계에서만 바라보았다. 이미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러고도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 대통령의 경축사에 일본에 관한 한마디 말도 없다는 것은 또한번 이웃을 보지 못한 것이다. 21세기형 민족주의에서 국가발전 전략과도 뗄수 없는게 평화속의 공존이라면 그 속에 진정한 극일이 배태될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수 있어야 우리도 선택될 수 있다는 논리다.

▲ 탈현대의 기수인 보드리야르는 『우주와 우리는 모두 저주와 악, 아니 악이 아니라 무관심과 무신념의 영역으로 들어섰다』고 경고한다. 이웃에 관한 무관심 , 그것은 일본이라해도 무관하다. 우리에게 항상 답이 없었다는 점과 상통하고 있는 오늘이다.

김채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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