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사진의 대가 아베든

입력 1999-08-14 14:06:00

현혹적인 패션사진의 대가. '리처드 아베든(1923~)'이라는 미국 사진 작가의 이름앞에 항상 붙는 수식어다. 1945년부터 현재까지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 '보그' 등에서 일한 그는 사진의 뒤편에 숨어있었던 상업사진가를 당당한 사진작가, 더 나아가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

그렇다면 아베든 이전에는 뛰어난 상업사진가가 없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가 '하퍼스 바자'에서 조수생활을 할 때만 해도 에드워드 스타이켄·세실 비튼. 조지 호이닝겐 등 수많은 작가들이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상업사진사(史)에 전환점을 찍은 작가로 만들었을까. 해답은 그의 작품안에 있다.1974년 5월호 '보그'지의 랑방 향수광고. 젖가슴을 드러낸 채 두 팔을 치켜들고 있는 여자와 그녀의 엉덩이에 몸을 밀착시킨 털투성이 남자. 여자의 비키니 아랫도리 한쪽 편엔 남자의 엄지 손가락이, 다른 한편에는 향수와 빗 등이 꽂혀 있다.포르노적 정신이 만연해 있던 당시 미국인들의 생활의 한 순간을 극단적으로 포착, 시대 정신을 그려낸 이 파격적인 사진은 판에 박힌 포즈로 모델이 서 있는 당시 상업사진의 경직성과 분명 구별되는 것이었다.

아베든은 순수 예술사진 작가로서 상업사진에 뒤지지 않는 명성을 쌓은 인물로 유명하다. 지난 95년 미국 휘트니 미술관이 그의 대규모 회고전을 기획했을 정도.초상사진을 특히 많이 찍은 그는 인간의 고통과 고뇌, 숨길 수 없는 추함을 충격적으로 묘사했다. 암으로 죽어가는 자기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찍은 '제이콥 이스라엘 아베든'이 그 대표작. 그는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서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사진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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