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人들 '참회의 성금' 발판

입력 1999-08-13 15:03:00

광복 54주년에 즈음해 우리는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일본인들의 참회를 본다.

12일 정오 경북 영양군민회관 옆 산자락에 일본인들로 구성된'일본의 평화와 생활을 맺는 회'회원 70여명은 자국에서 모은 2천만엔의 성금으로 오키나와전에서 희생된 이곳 출신 징용자들의 원혼을 추모하는 '오키나와전 피징발자 한(恨)의 비'를 세워 제막했다.

양국 500여명의 유족들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의 묵념, 살풀이 춤에 이어 제단에는 흰 국화 1천 송이와 일본회원들이 접어온 1천마리 종이학이 봉헌됐다."전장에서 한많은 생을 마감한 동료들의 넋을 이렇게 나마 달래 주게 됐으니 이젠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문을 쓰다듬으며 몸서리 쳐지도록 참혹했던 그 전장의 아픈 기억을 쓸어 내리는 강인창(80.영양군 서부리)옹.

1944년 6월 18일 오전 영양경찰서 경무주임과 면장의 3일간 대구 모처의 비행장 보수공사를 가야한다는 말을 듣고 집을 나선 강옹은 경찰서 앞마당에 미리 대기해 있던 읍내 같은 또래 장정 120명과 함께 그길로 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단 3일간의 군사교육을 받고 사지의 오키나와에 떨어진 강옹은 토굴을 파고 아이 덩치만한 포탄을 나르는 일본군 잡역부 일을 맡았다.

보급이 끊겨 주린 배를 채우려 풀잎과 곤충을 먹은 뒤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꼈던 헛구역질과 구토, 비오듯 하는 미군의 포탄에 함께간 친구들의 몸이 찢겨 날아갔지만 공포와 절망감에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고 한다.

강씨는 지난 97년 7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와 일본내 전후문제를 생각하는 민간단체 모임인 '일본의 평화와 생활을 맺는 회'의 전국집회에 초청돼 50여년 만에 오키나와 현지를 둘러 보던중 자마미의 전몰자 추모비에 한국인들의 이름이 아예 없는 것을 발견했다.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영문도 모르는채 죽어갔던 1만 4천여명의 조선인들을 알고 있는지 또 조금이라도 그들의 원혼을 달래줄 생각이 있다면 한국땅에 추모비를 세워줘야 한다고 절규, 이 비가 세워지게 됐다.

鄭敬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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