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틀란트 러셀은 기숙학교를 세워 직접 운영하기도 하면서 교육에 관한 논저도 다수 집필하였다. 실험학교를 통해 자신의'교육론'을 직접 실험해보기도 했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는데, 아이들에게 지나친 자유를 준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러셀은 '체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철학자였다. 그러나 후년에 가서는 '아이들에게 날마다 일정한 과제를 줄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러셀은 과거의 교육이 지닌 병폐는 '아이들에게 위협을 주어 이 위협을 통해 억지로 가르치르고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러셀이 그의 저서'교육론'에서 제기했던 여러 문제점들은 오늘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쟁점들이기에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칭찬과 꾸중을 사용하지 않고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러셀은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어느 정도의 조심성이 요구된다. 첫째, 이 두 가지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식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누구누구는 그것을 못하는데(잘하는데) 너는 잘 하는구나(왜 못하느냐) 식이거나, 누구누구는 그런 장난을 절대로 하지 않는데 너는 왜 자꾸 말썽을 부리느냐 식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말들은 경멸을 가져오거나 미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둘째, 꾸중은 칭찬보다 훨씬 더 적게 해야 한다. 꾸중은 올바른 행위에서 벗어난 경우에 가하는 분명한 벌이어야 하며, 그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난 후에까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당연한 일에 대해서는 칭찬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용기나 기능의 발달에 대해서, 혹은 도덕적인 노력에 의해 아이가 어떤 일을 해냈을 경우, 또는 소유물에 대한 바른 행위 등에 대해서 칭찬을 하는 것이 좋다. 조금이라도 뛰어난 행위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성취한 그 무엇에 대하여 칭찬을 받는 것은 어릴 때의 가장 즐거운 경험 중의 하나이다. 아이에게 '용기를 내라' 혹은 '친절하라'식으로 말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특별히 용감한 행위를 아이에게 권장한 뒤 '훌륭하군. 너는 용감한 아이로구나' 하고 칭찬해 주는 것이 훨씬 좋다. 러셀은 도덕교육은 자연스럽게 나타난 구체적 상황 속에서 취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의 잔인성을 다룰 때에도 원리는 같다. 즉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가 엿보이면 그 이상으로 발전되지 않게 해야 한다. 만약 아이가 커서도 상당한 정도의 잔인성을 드러낸다면, 사태를 신중히 다루어 마치 병이나 되는 것처럼 취급해야 한다. 홍역이라도 치른 것처럼 벌을 주어야지 그냥 나쁜 짓을 했다고 느낄 정도의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런 방법은 병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흔히 성공을 거들 수 있다.
러셀은 어떤 경우라도 아이에게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평범한 형태라면 큰 해악을 가져 오지는 않겠지만, 심한 경우에 체벌은 반드시 아이에게 잔인성이 길러지게 한다. 체벌이 습관화되면 만성이 되고, 만성이 된 체벌은 언젠가 권력을 획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인간에게는 아주 위험한 교육이 된다. 체벌은 또한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사이의 순수한 신뢰 관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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