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물난리-이모저모

입력 1999-08-02 15:00:00

○..."3년전하고 변한 게 없어요. 이제는 아주 지겹습니다"1일 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산초등학교에 대피한 수재민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당국의 수해대책을 성토했다.

이들의 불만이 가장 집중되는 부분은 늑장 대피방송.

오잔 7시께 사이렌 소리를 듣고 일어나 급히 집을 나온 엄한섭(34.자영업)씨는 새벽 3시 20분께 문산읍 일대 저지대에 대피발령을 내렸다는 당국의 발표에 "새벽 그 시간에 몇명이나 방송을 들었겠느냐"며 기막혀했다.

"나는 TV라도 장롱위에 올려놓고 나왔으나 나같은 사람은 열에 한둘도 안될 것"이라는 그는 "비가 쏟아지고 물이 차오르고 나서야 대피방송을 하면 일기예보는 왜 있느냐"며 늑장 대피방송을 원망했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수해에 대한 무대책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정운선(58.농업)씨는 "매번 비가 올 때마다 이 고생을 해야 한다면 뭔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뒤 "매년 당국에 대책을 세워줄 것을 호소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당장은 힘들고 수년 걸린다'는 말뿐"이라고 분개했다.

○...강원도 철원지역에 내린 게릴라성 폭우로 분산, 수용돼 있는 이재민들이 생활필수품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 이중고통을 당하고 있다.

의료보험관리공단 철원지소에 수용돼 있는 신철원 4리 1반 주민 50여명의 경우 지난달 30일 밤 10시 집에서 나온 후 컵라면 1개로 끼니를 해결한 실정이다.

특히 어린이들과 일부 지체장애인들도 이재민에 포함돼 있으나 분유, 밥 등을 구하기 힘들어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밤에 개울물이 불어나자 취사도구 등을 전혀 챙기지 못한 채 몸만 빠져나와 식사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불 등 취침도구도 턱없이 부족해 새우잠을 자야했다.

또 808가구 2천346명이 고립돼 있는 지역도 접근 도로망과 교량이 침수되거나 유실돼 구호품이 전달되지 못했으며 군부대 헬기로 라면과 모포를 전달하려던 계획도 기상악화로 실패했다.

한편 대한접식자사는 철원군 이재민을 위해 260만원 상당의 모포 120장과 라면20상자를, 전국재해대책 협의회는 모포 500장 등을 긴급히 보내왔으나 아직 배포되지 못하고 있다.

○...2일 수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산초등학교에서 대피 첫날밤을 지낸 수재민들은 물 부족, 잠자리 불편, 통신 두절 등 '3중고'에 시달렸다.

문산초교 48개 교실과 체육관에 분산 수용된 수재민 1천여명이 가장 큰 불편을 호소한 부분은 식수와 생활용수 문제다.

1일 오후 5시께 파주소방서 소방급수차가 15t의 세면용 물을 공급했지만 30분만에 동난데 이어 문산읍 새마을 협의회에서 200여ℓ 가량의 식수를 공급했지만 이마저도 태부족이었다.

윤진선(22.여.회사원)씨는 "하루종일 한 번도 씻지 못해 너무 불편하다"며 "화장실에도 물이 없어 불결하기 그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수재민 규모에 비해 대피소 공간이 협소, 수재민들은 1개 교실에 30, 40명의 다른 수재민들과 함께 딱딱한 교실 마루바닥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차탄천이 범람하면서 31일 밤부터 시내 전역이 침수됐던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지역 주민들은 1일 오전부터 서서히 물이 빠지자 재기를 위한 복구작업에 본격 나섰다.

그러나 주민들은 큰 비가 내릴 경우 상습적으로 이번 같은 홍수사태가 빚어져서인지 체념한 듯 담담한 표정을 보여 주위사람들을 오히려 안타깝게 했다.

군청이 소재하고 있는 연천읍 시가지는 물이 빠지면서 토사와 쓰레기더미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도로가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어, 마치 폐허가 된 도시를 연상케 했다.

각 주택에는 안방까지 흙과 모래, 쓰레기 등이 밀려들고 일부 오래된 가옥은 벽이 무너져 내려 폐가를 떠올리게 했다.

도로변에는 각 가정에서 쏟아낸 물에 젖은 옷가지와 쓰레기, 못쓰게 된 가재도구들이 흙더미와 함께 줄지어 쌓여 있었으며, 곳곳에서 지하실 등에 차 있는 물을빼내기 위해 동원한 경운기와 양수기 소리가 요란했다.

주민들은 흙으로 덮여 있는 전자제품을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농약살포기 등을 이용, 흙을 씻어내느라 구슬땀을 흘렸으며, 일부 가게에서도 물에 젖은 상품 등을 밖으로 들어내 손질하느라 분주한 일손을 움직였다.

○...인천시가 1일 내린 집중호우로 남구 용현동 일대100여 가구가 침수된 사실을 숨긴 채 피해상황을 축소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지역은 시(市)가 그동안 수방대책을 세우지 않아 3년째 상습침수에 따른 피해가 잇따라 수방대책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인천시 재해대책본부는 지난달 31일~2일 오전 7시 현재까지 인천지역에 최고 497㎜의 폭우가 쏟아져 46억원 상당의 재산피해와 8명(3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을 뿐이라고 2일 밝혔다.

그러나 지난 1일 오전 6시께 시간당 49㎜씩 내린 폭우로 인천 남구 용현 2동과 5동 일대 100여 가구와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가능포들과 내가면 고촌 2리, 부평구 삼산동 일대의 농경지 1천100여㏊가 물에 잠겼다.

하지만 시는 관할 구. 군으로 부터 이같은 상황을 보고받고도 피해상황 집계에서 고의로 누락시키고 응급복구 지시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