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부터 신창원·김명주 부부(?)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눈을 팔았다. 그에 못지 않은 빅 뉴스가 뒤따랐지만 거기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IMF박사로 알려진 경기도지사 부부의 수뢰사건, 검찰 수뇌부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대우재단의 파산소식, 내각제 파란과 양당합당설의 소동, 신당창당설과 팔불출같은 3김시대의 재현 소식 같은 빅 뉴스들이 줄을 이었는데 이제는 격분도 시들하고 호기심도 없다는 반응이다.
그것들은 거짓말 잔치 같아 듣기도 싫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여 신창원이 죽일 놈이기는 하지만 잔재주가 없고 거짓이 없고 변덕스럽지가 않아 정이 간다고 한다.30년에 걸친 민주화운동으로 보면 오늘날의 사회가 너무 실망스럽다. 정신을 담고 정을 붙일 곳이 없다. 민간정부가 등장하면서 양심과 정의의 길이 드러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다. 보스들의 야합이 판을 치는 가운데 정치인들은 생각없이 이 그룹 저 그룹으로 옮겨 다닌다. 모두가 그러니까 배신자, 변절자의 소리도 없어졌다. 그냥 '걸레 정치꾼'이라고 말한다. 이 물통이면 어떻고, 저 물통이면 어떠냐는 걸레처럼, 정당을 바꾸어 다닌다. 맑은 물통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거기에 비하여 변덕없이 숨어다닌 신창원이 냄새가 나도 한가지 냄새만 나니 그것이 오히려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신창원을 한국판 '로빈 훗'이라고 보도한 언론이 있었다던가.
김명주라는 여인의 고백에서도 신창원으로부터 인간적 매력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20일간에 불과한 부부관계였지만, 진실된 인격에 연민의 정을 갖게 돼 신고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정도면 부부라고 해도 좋다. 그 전의 다른 여인들도 비슷한 생각과 처지에서 그를 숨겨 주었다.
그런데 세상에서 그 여자에 대하여도 동정을 보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고하지 않은 것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나쁘지만 진실성에 연민의 정을 말하는 정도의 여자라면 고운 마음씨를 가졌다고 보아야 한다. 즉 착하지는 않지만 곱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신고하면 5천만원이 생길 것을 알면서도 그의 인간성에 끌려 신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여인들이 보는 인간성이 옳은지는 몰라도 어떻든 돈보다 인간성을 앞세웠다. 뇌물을 받고 대가성을 따지는 정치인들의 소리에 신물이 난 우리들의 귀에는 곱게 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옷로비의 뉴스를 던진 여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고관부인들로 학력도 높고 말도 잘하고 교회도 잘 다녀 보기에는 착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옷을 입었느냐, 팔에 걸쳤느냐, 또 대가성이 있느냐를 가지고 다툰, 착하지도 곱지도 않은 여인들이었다. 거기에 비하여 술집 여자들은 착하지는 않지만 고운 마음씨를 가졌다. 남편의 자리를 이용하여 기업 부도와 은행퇴출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잘난 여인들 보다는 단란주점의 여인이 훨씬 곱다.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착하지 않는 곳에 고운 마음씨를 쏟는 곳은 정신적 반란이다. 그 정신적 반란에 동조하는 대중심리 역시 정신적 반란을 의미한다. 정신적 반란이 어디에서 올까? 지도층이 착하지도 않고 곱지도 않으면서, 착하고 고운 척 하는 거짓을 일삼으니 정신적 반란을 꾀하는 것이다. 신창원에게 호기심을 보내는 마음도 역시 정신적 반란의 표현이다.
토인비가 그랬던가. 문명붕괴의 첫 징후가 내적 프롤레타리아트(정신 반란)의 성장이라고. 이 말이 무섭지 않다면 그 또한 정신적 반란이다.
국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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