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20세기 문화(12)-뮤지컬

입력 1999-07-31 14:06:00

할리우드 영화와 팝음악. 돈 되는 문화상품 개발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의 자랑거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뮤지컬이라는 요상한 장르의 상업예술이다.

도대체 '뮤지컬'이 뭐란 말인가? 이젠 '뮤지컬 코미디(musical comedy)'나 '뮤지컬 플레이(musical play)'란 말도 완전히 사라지고, 몸통을 버린 '뮤지컬'이란 수식어가 만국공통어로 쓰이고 있다. 이것은 연극인가? 아니면 음악? 아니면 춤? 20세기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icon)의 하나가 된 이 괴물의 정체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은 바야흐로 오페라와 연극을 위협하는 공연계의 절대강자로 떠올랐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를 중심으로 40여개의 크고 작은 극장이 모여있는 브로드웨이는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뮤지컬 관광객으로 이제는 '넓은 길(broad way)'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좀 유명하다 싶은 작품을 보려면 최소한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햄버거와 코카콜라에 이어 '세계인의 입맛'이 돼버린 뮤지컬의 실체를 한번 더듬어 보자.

♪♪뮤지컬의 역사=뮤지컬의 시초는 1728년 영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는 위트 넘치는 작곡가 헨리 퍼셀의 작품에서부터 거리의 유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들을 자유롭게 이용해 만든 작품. 그러나 현대적인 뮤지컬의 틀을 갖추게 된 것은 역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이르러서다. 19세기 중엽 미국에서는 민스트럴 쇼(흑인 영가와 셰익스피어 희극, 오페라가 혼합된 미국식 악극)가 널리 공연됐으며 거기서 파생한 보드 빌(풍자적인 대중가요를 의미하는 용어, 가벼운 뮤지컬 극), 발레스크(해학적인 내용의 풍자극) 등 미국적인 뮤지컬 쇼가 자라났다. 여기에다 유럽에서 수입된 코믹 오페라, 오페레타 등이 결합돼 현대적인 뮤지컬이 만들어지게 됐다.

1950년대에 이르러 '아가씨와 건달들'(1950), '왕과 나'(1951), '피터팬'(1954), '마이 페어 레이디'(1956),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 등 기념비적인 작품들이 쏟아지면서 뮤지컬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이때부터 뮤지컬은 단순히 여흥을 위한 '쇼' 수준에서 탈피, 문학적인 주제와 감미로운 음악 등 예술성을 찾아나선다.

60년대와 70년대의 뮤지컬은 코믹 일변도의 가벼운 옷을 벗고 사회적인 문제들을 껴안는 진지함으로 갈아입는다. 엘비스와 비틀즈의 영향으로 사운드 역시 획기적으로 발전한다. '안녕, 돌리'(1965), '지붕위의 바이올린'(1965), '헤어'(1967), '코러스 라인'(1975) 등이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

80년대 이후는 뮤지컬이 산업화한 시기다. 변화의 중심에는 영국의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있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2), '에비타'(1978), '캐츠'(1981), '오페라의 유령'(1981), '레미제라블'(1980) 등 그의 작품은 아직까지 전세계로 수출되는 히트 상품이다.

90년대의 뮤지컬은 주제나 형식면에서 보다 종합적인 요소를 갖추고 대형화·전문화되고 있다. 오페라와 뮤지컬 무대를 넘나드는 세계적인 스타들이 등장하고 그 장르의 벽도 점차 얇아지고 있는 추세.

♪♪뮤지컬의 특징=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뮤지컬의 특징을 딱 꼬집어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노래, 춤, 연기의 혼합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작품에 따라 연극이나 무용적 요소가 과감히 생략되는 경우가 흔한데다 음악이라는 것도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선율에서부터 록, 재즈, 레게, 힙합에 이르기까지 무제한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작품들은 극적인 요소가 많이 첨가되는 추세다. 한국의 대표적인 뮤지컬 '명성황후'도 마찬가지. 미국과 영국 뮤지컬의 세계지배를 견제하기 위해 각국이 앞다퉈 수준 높은 작품 개발에 열올리고 있는 것도 최근의 추세다. 그러나 그 작품들을 평가받는 시험대는 아직까지도 미국의 브로드웨이 아니면 영국의 웨스트 엔드에 머물고 있다.

20세기 뮤지컬의 보편적인 특징은 낙천주의, 휴머니즘, 유머, 로맨틱하고 듣기 쉬운 선율, 속도감 있는 전개, 낭만적인 스토리 등 다분히 미국적 취향들이 반영되는 점에 있다. 콜 포터, 레너드 번스타인, 어빙 벌린, 죠지 거쉬인 등 뮤지컬에 애착을 보인 걸출한 음악가들이 없었다면 미국식 뮤지컬은 텔레비전용 싸구려 쇼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미국적 취향은 지적인 자극보다는 보고 듣고 즐길 거리를 찾는 관객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오락성의 극대화'라는 것으로 뮤지컬을 고착시켰다. 근본적으로 향락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탄생한 뮤지컬이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런 공연 양식을 견지하면서도 크게 타락하지 않고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 역시 음악의 힘이다. 아무리 눈요기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무대라 하더라도 관객들은 노래가 시원찮은 뮤지컬은 철저히 외면하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뮤지컬 코미디', '뮤지컬 플레이'라는 말에서 '뮤지컬'만 살아 남았을까. '뮤지컬'이란 말은 '음악적(musical)'이기만 하다면 그 뒤에 어떤 것이 따르더라도 죄다 포용할 수 있는 뮤지컬의 특징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인지도 모른다.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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