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로렌스 장편 '캥거루' 첫 번역 출간

입력 1999-07-28 14:11:00

'아들과 연인' '채털리부인의 사랑'의 작가 D.H.로렌스(1885~1930)의 장편소설 '캥거루'(생각하는 백성 펴냄)가 국내에서 처음 번역출간됐다.

우리독자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작품은 로렌스가 1922년 영국을 떠나 3개월동안 호주에 머물면서 쓴 소설. 작품구상 후 43일이라는 단시간내 완성한 소설로 1923년에 발표됐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외모나 내면세계 모두 로렌스와 닮은 3인칭 시점의 자전적 소설로 평가된다.

1차 세계대전 후인 1920년대 호주의 사회 분위기가 녹아 있는 이 소설에는 작가가 전쟁때 겪은 체험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정상적인 세계는 영원히 상실돼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주인공 서머즈는 영국을 떠나 먼 호주에 온다. 막연히 전쟁과 동떨어진 곳으로 생각했던 호주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상흔이 깊고, 불온한 공기가 떠돌고 있다. 좌우 양 진영사이의 대립. 서머즈는 정권을 장악한 노동당과 우익 비밀결사조직인 '디거 클럽'으로부터 각각 가입권유를 받는다. 소설제목인 캥거루는 '디거 클럽' 리더의 별명이다. 실제 '국왕과 제국연맹'이라는 비밀조직의 창설자이자 리더인 찰스 로젠탈이라는 인물이 이 작품의 모델로 파악되고 있다.

로렌스가 이 작품에서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것은 '동료애'다. 개척시대부터 호주사람들 사이에 배양된 정신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호주를 도와주려고 하는 진지한 한 사나이의 모습, 현실 정치와 자신의 생에 직면한 내면세계의 갈등을 콜라주기법으로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독특한 감성으로,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아주 자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데 로렌스문학의 특질이자 '생'에 대한 신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충실한 태도가 감지된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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