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왕관 수리 전문점

입력 1999-07-26 14:29:00

쇠를 다뤄 근근이 입에 풀칠해 오던 어떤 이가 하루는 왕의 행렬을 구경하게 됐다. 자세히 보니 왕의 머리에 씌어진 왕관 한 쪽이 망가져 있었다. 왕에게 나아가 엎드린 그는 왕관을 수리하겠다고 말했다. 거뜬히 왕관 수리를 끝내자 왕은 기특하다며 후한 상을 내렸다. 한꺼번에 거금을 거머쥔 그는 집으로 달려가 아내에게 오늘 일을 말하고 많은 돈을 벌 수있는 일거리를 찾았다고 큰소리 쳤다. 그리고는 이튿날 대문짝에다 큼직한 간판을 하나 내걸었다. '왕관 수리 전문점'. 우리 정당들도 어딘가 망가지긴 되게 망가진 모양이다. 수리를 해야 한다고 걱정들이 철철 넘친다. 여당에서는 세대교체를 추진하고 각계의 신선한 피수혈과 α 영입 등 바퀴돌아 가는 소리로 흙 먼지가 뽀얗게 일 정도다. 이에 질세라 야당도 같은 흙먼지를 내고 있으니 정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실망감은 두께가 갈수록 두터워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끝마다 개혁정당이니 신당창당이니 하며 겉은 번지르르하게 꾸미고는 안으로는 케케묵은 이름들을 내놓는다. 그 면면들이 어떤가. YS정권때 각료를 지냈거나 그 주변을 얼씬거렸던 인물 아니면 흘러간 민주당 인사들 등 선거철만 되면 푸시시 얼굴 내미는 축들이다. 우케멍석에 참새 꼴이라더니 그래서야 수혈된들 새로운 이미지를 얻을리 만무하다. 정당들의 설레발치는 모습에서 내년 총선이 더 바짝 다가온 느낌이다. 선거는 이겨야 하고 이길려면 표를 많이 낚아야 하고 표를 많이 낚으려면 역시 꾼들이 최고라는 말일까. 구태의연을 벗어나지 못한 정치풍토지만 그래도 시대는 다행히 변화를 주고 있다. 정치에서도 질적인 팽창이 요구되는 시대라는 말이다. 가난 가난해도 인물가난이 제일 서럽다는 우리 속담처럼 가난한 인물로 큰 정당인양 거드름 피우는 정당을 살펴야 한다. 그런 정당이 있는 한 우리들 주변에는 '왕관 수리 전문점'들이 속속 간판을 내걸수 밖에 없다. 어디 왕관이 그렇게 흔한 시대인가.

김채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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