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입력 1999-07-24 14:03:00

이제 더 이상 그를 '신동'(Wunderkind) 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그는 이미 '영화 제국의 황제'가 됐다. '흥행의 마술사''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1946~ ). 한때 그는 자신을 '영화판의 도박사'라고 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잃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태양의 제국'(87년)은 6천600만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린 작품이다. 모든 경비를 제하고 영화사측에 남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분명 실패한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흥행수입의 25%가 스필버그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흥행의 귀재''흥행 보증수표' 스필버그.

20세기 영화를 결산하는데 스필버그를 얘기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의 영화 줄기가 '흥행'과 '오락'에 두고 있으며, 영화를 예술로서 보다 하나의 산업으로 굳힌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인류에게 꿈과 환상, 희망을 선사한 보기 드문 인물이기 때문이다.

스필버그 영화의 매력은 '서민에 대한 찬미'다. 'ET'의 엘리어트 가족, '레이더스'의 인디아나 존스박사, '쉰들러 리스트'의 유태인들, '라이언 일병구하기'에 나선 군인들. '영웅적' 결말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다. 그들을 찬미함으로써 관객에게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고 있다.

스필버그는 할리우드의 역대 흥행베스트에 오른 15편의 영화중에서 6편을 만든 감독이다. 28세에 만든 '죠스'는 1억달러 흥행수익의 벽을 돌파한 최초의 영화가 됐으며, '쥬라기 공원'은 전세계에서 8억 5천만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완구나 장신구 등 캐릭터 수익은 그보다 많은 10억달러로 추정된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포브스'는 "창조력을 대중의 기호를 감지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면, 스필버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인물일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묘한 것은 스필버그의 성공이 모두 그의 참담한 기억에서 잉태된 것이란 점이다. 그 스스로 희망을 주는 마술사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무척 겁이 많은 소년이었다. "내 방의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나무도 무서웠고, 침대 밑이나 장롱안에 있는 갖가지 물건들도 모두 무서웠다"고 어린시절을 술회한 적이 있다. 생긴 것도 여드름 투성에다 깡말라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했다. 열여섯살 때 부모가 이혼했으며, 대학(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롱비치캠퍼스 영문학)에서도 독서능력 부족과 학습장애로 중퇴했다. 지금도 그는 자신이 쓴 110쪽짜리 시나리오 한 편을 읽는데 무려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영화를 공식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12세 때 이미 아버지가 사준 8mm 카메라로 영화를 만들었으며, 혼자 있을때는 다락방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쓰고, 그림 그리는데 시간을 보냈다.

어린 시절 불우한 기억은 그의 영화에 잘 배어 있다. 'ET' '태양의 제국' '후크'는 결손가정을, '칼라 퍼플' '쉰들러 리스트'는 유태인이란 소외의 경험을, '듀얼'(TV영화) '죠스'는 공포감,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은 모험에 대한 동경을 담아 넣었다. 그래서 스필버그는 자신의 영화를 '전이영화'(transitional film)라고 규정했다. 경험을 환상으로 옮기는 작업이란 뜻이다.

94년 '쉰들러 리스트'가 아카데미상 7개부문에서 수상하기까지 오스카(아카데미상의 별칭)는 스필버그에게 있어서 축복이기보다 저주의 대상이었다. 가장 할리우드적인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배척당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쉰들러 리스트'는 유태인이란 설움과 함께 아카데미와의 악연까지 일소(一掃)시킨 작품이었으며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 등을 수상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스필버그를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오스카 시상식 다음날 스필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것이 꿈이라면 나를 깨우지 말라"

스필버그의 다음 행로를 짐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관객에게 외면당하는 영화는 만들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관객의 꿈과 사랑을 스크린에 옮겨 담는 영원한 '피터팬' 스필버그. 그의 꿈은 20세기 최대 발명품 중 하나인 영화를 통해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金重基기자

■스필버그 재산 얼마일까

스필버그의 재산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5월 로스앤젤레스 비즈니스 저널이 발표한 'LA 최고부자 50인'에 따르면 스필버그의 재산은 15억달러. 부자가 많은 LA에서 그의 재산 순위는 10위.

스필버그는 매년 2억달러 가량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97년에는 '잃어버린 세계'의 흥행 성공에 힘입어 3억1천300만달러를 벌어들여 그해 연예인 소득순위 1위에 올랐다. 하루 86만달러(10억원)를 번 셈.

96년과 95년도 각각 1억5천만달러와 2억8천500만달러를 벌어들여 흑인 쇼프로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와 1,2위를 다투었다.

그의 첫 수입은 얼마일까? 첫 흥행수입은 16살때 SF스릴러 '파이어라이트'(Firelight)로 번 돈 100달러. 동생들을 출연시켜 만든 8mm 영화로 '크로스 인카운터-미지와의 조우'의 원전이 된 작품이다. 아버지에게 빌린 400달러가 제작비의 전부. 동네 영화관에서 상영, 500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우리돈으로 약 1조8천억원이 넘는 그의 재산은 바로 100달러에서 출발한 것이다.■스필버그 작품 연보

1969 '앰블린'

1971 '듀얼'

1973 '슈거랜트 익스프레스'

1975 '죠스'

1977 '크로스 인카운터-미지와의 조우'

1979 '1941'

1981 '레이더스'

1982 'ET'

1985 '칼라 퍼플'

1987 '태양의 제국'

1989 '올웨이즈'

1991 '후크'

1993 '쥬라기 공원'

1993 '쉰들러 리스트'

1996 '아미스타드'

1997 '잃어버린 세계'

1998 '라이언 일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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