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신세대-3)소비의식과 행태

입력 1999-07-23 14:10:00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시골 장터에서 들려오던 떠돌이 약장수의 고함소리. 그러나 시대는 더이상 이 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른바 '애들'없이는 돈벌 궁리하지 못하는 세상.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들의 지위는 '상비군'. 이제 신세대들은 더이상 '예비군'이 될 수 없다.

신세대들이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이시대 문화의 주된 생산자와 소비자가 되어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세대들이 돌리는 세상의 바퀴는 어디로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움직이는 세상을 들여다본다.

▨시장을 뒤흔드는 손90년대 최대 성장산업 이동전화. 이동전화사업의 양적확대를 가져온 것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신세대들 덕분이다.

실제로 최근 가입자 300만을 돌파,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의 선두주자로 올라선 한국통신프리텔이 지난 3월말 각 연령대별 이용량을 조사한 결과 10대 가입자가 다른 연령에 비해 압도적으로 이용시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전화의 성장이 10∼20대 연령층에 의해 주도됐다는 반증이다.

조사에 따르면 10대 가입자의 월평균 이용량은 142.5분, 20대는 136.7분, 30대는 115.6분이었다. 40대는 109.5분, 50대는 91.4분, 60대는 79.4분으로 10대가 60대에 비해 월평균 사용량이 2배가량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사정이 이런만큼 상당수 기업이 신세대에 초점을 맞춘 영업전략을 내놓고 있다. 국내 최대의 이동통신 사업자 SK텔레콤은 이달 중순 10대와 20대를 겨냥한 'TTL마케팅'계획을 발표했다.

TTL마케팅은 신세대의 라이프사이클에 맞는 다양하고 저렴한 요금제와 신세대 취향의 전용단말기, 문화 및 휴식공간 제공, 패스트푸드점 등 가맹점 할인혜택이 포함된 종합마케팅 개념. TTL이란 의미도 Time to Love, The Twenties Life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도록 사전에 특정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마케팅전문가들에 따르면 특정계층을 겨냥한 브랜드 마케팅은 사실상 처음 시도된 사례라는 것. 게다가 이동전화의 경우, 10대와 20대 연령층 중 일부가 요금을 제 때 내지 않는 악성고객이어서 모험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만큼 이들이 가공할 구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화장품·스포츠음료 등에서도 신세대들의 입김이 매출을 좌우한다. 화장품공업협회는 국내 10대 전용 화장품시장의 매출이 지난해 약 700억원대에서 올해는 1천억원대로 급팽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클린앤클리어'로 유명한 한국존슨앤존슨은 올해 매출목표를 지난해보다 150% 높인 500억원대로 올려잡았다. 신세대들이 고객인 시장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10대를 타깃으로 한 제품에 다소 무관심했던 나드리화장품 등 대형화장품업체들도 특수영업부를 조직하는 등 시장개척에 뛰어들고 있다.

스포츠음료회사들은 아예 중·고교 등 각급 학교를 직접 방문, 시음회를 여는 등 신세대 입맛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화생산·소비의 주력(?)국내최대 음반유통업체인 (주)신나라유통이 이 달초 발표한 '99년 가요-팝 상반기결산 '에 따르면 판매량 1위에서 20위권까지를 신세대 가수들이 차지하고 있다. 1위는 유승준의 '슬픈 침묵(78만장)', 2위는 핑클 '영원한 사랑(60만장)', 3위는 김현정 '실루엣(55만장)' 등.

20위권도 박진영·신화·박정현·김경호·클론 등이 차지, 30·4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이 가요시장에 불어넣는 입김은 그야말로 미풍이다.

사정이 이러한 만큼 음악시장에서 10대들의 시장 점유율은 사실상 전체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연간 음반시장규모는 2천300억∼2천500억원. 10대후반에서 20대초반대 연령층이 레코드점에서 뿌리는 돈이 1천억원을 넘는다는 계산이다.

사실 10대들이 음반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뒤 10대 파워는 급부상했고 요즘은 초등학생들이 레코드점을 찾는 것도 일상화됐다.

음악의 판도를 바꾼 10대들은 방송의 흐름도 변화시켰다. 각 방송매체의 가요·오락프로그램의 주 시청자층은 청소년. 당연히 이들을 노리는 광고가 몰려든다. 방송사들이 광고가 몰리는 프로그램을 마다할 리 없다. 이러니 신세대 입맛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프로그램 개편때마다 나오는 '10대에 편중하는 편성 지양'이라는 방송사의 말이 먹혀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구방송(TBC) 라디오 가요프로그램인 '매직뮤직' 담당PD 전병준(29)씨. 그는 자신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신세대 위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신세대가 좋아하는 댄스곡에다 가끔 발라드를 끼워넣는 정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라면 신세대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과 PC통신, 팩스로 사연을 밀어넣는 청취자들이 대부분 10, 20대의 신세대들이니까요. 아예 특정 청취자를 대상으로 한 특화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모르겠지만 그들의 귀를 무시하고 프로그램에 변형을 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전PD는 신세대들의 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전을 새로 쓴다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가장 손쉬운 방법중의 하나가 그 시대의 언어를 살펴보는 일. 시대의 변화가 빠른만큼 요즘처럼 새로운 단어가 쉴새없이 생성·소멸되는 때도 없었다. 신세대들이 PC통신 등을 통해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추세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짧은 것이 좋은 그들의 생각이 언어생활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

'짱' 언뜻 들으면 무슨 과자 이름처럼 들리는 단어. 하지만 그들은 이 말을 '최고'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젠 TV에 방영되는 만화영화 제목으로도 자리잡았다. 이미 표준어(?)가 되어버린 '왕따'. '따돌림'을 뜻하는 말이지만 '왕따'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교육부가 얼마전 '집단 따돌림'이란 말로 대체해 사용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지만 쉽게 바뀌진 않는다. 그만큼 언어를 직접 사용하는 집단의 위력이 크다는 의미다.

고등학생도 신세대들은 '고딩'이라 부른다. 어른들이 들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에게 조금만 관심이 있고 PC통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선생님들은 다 아는 단어.

영어로 만들어진 약자도 많다. 'I·N·V·U'는 'I Envy You', 인기댄스그룹 'H·O·T'는 'High Five Of Teenagers(십대들의 승리)'를 뜻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댄스그룹 신화의 히트곡 T·O·P는 Twinkling Of Paradise의 약자.

이러한 추세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지만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아는 암호같은 약어를 통해 또래 의식을 재확인한다. 기성세대가 좋아하든 말든 그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崔敬喆기자

---전문가진단

-유명기교수(경북대 문화인류학)

"신세대들이 새로운 소비패턴을 형성하면서 시장이 그들의 기호에 맞춰 재편되는 등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세대들은 문화적·경제적인 면에서 새로운 동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경북대 유명기(50·문화인류학)교수는 이러한 시대상의 변화가 미래에 어떻게 투영될 것인가를 분석해 내는 것이 기성세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기성세대가 살아온 시절을 회고해보면 항상 젊은층이 기존문화를 일탈,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신세대들은 정보화와 연계, 그 변화의 속도와 위력이 과거 어느때보다도 강력합니다"

유교수는 그러나 신세대 문화가 분명 주체적인 것이 되어야 하며 최근의 경향은 개성주의의 획일화, 몰개성의 문화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신세대가 좋아하는 댄스와 힙합의 물결이 진정 그들의 주체적 문화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합니다. 어떻게 건너왔고 왜 좋아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진단없이는 자칫 자아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지요"

이와 관련, 유교수는 신세대들에게 보다 뚜렷한 주관과 자아를 주문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어떤 방향으로 획일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반발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큰 것이지요. 신세대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타인에 대한 책임을 갖게되면 당연히 현재의 그들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유교수는 '문화의 관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신세대들을 바라보면 기존 문화의 본류로 회귀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崔敬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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