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입력 1999-07-22 14:10:00

화가출신인 영국의 피터 그리너웨이감독은 난해한 영화를 만들기로 소문나 있다. '건축사의 배''차례로 익사시키기''마콘의 아이'등 은유와 상징으로 일관된 영화로 늘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가 89년에 만든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The Cook, The Thief, His Wife and Her Lover)는 그의 작품치곤 비교적 드라마가 강한 영화에 속한다. 제목그대로 '요리사'와 식당주인인 '도둑', 그의 '아내'와 그 아내의 '정부', 그리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손님이 주인공이다. 요일별로 파트가 넘어가고 갖가지 색감의 주방과 식당 바깥풍경이 번갈아 가면서 보여지는, 형식미가 화려한 영화다.

자세히 뜯어보면 프랑스 혁명의 의미를 패러디한 것을 알 수 있으나 형식은 지극히 자극적인 영화다.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음식물들, 전혀 에로틱하지 않는 섹스신, 주방의 그로테스크한 풍경··. . 특히 마지막 장면에선 식인장면까지 나온다폭압에 눌려 지내던 '아내'와 '요리사'는 '도둑'에게 거대한 요리상을 내민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던 '도둑'은 아연실색한다. 자신이 죽인 '정부'가 갖가지 양념으로 통구이가 돼 있다. 아내는 권총을 겨눈채 먹으라고 강요한다. 억지로 살점을 뜯어 삼키고 바로 토하는 '도둑'에게 '아내'의 권총이 불을 뿜는다.

'요리사…'는 국내 개봉되지 못하고 비디오('드림박스')로만 출시됐다. 원작의 러닝타임은 119분인데 비해 출시된 비디오는 102분에 불과하다.

외국에서 들려온 명성으로 이 비디오를 빌려 본 사람들은 "과연 난해하구나" 생각했지만 사실은 '웬만한' 장면이 모두 잘려 나갔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지막 식인장면은 통째 잘려나갔다. 문을 열고 거대한 요리상이 들어오다가 바로 권총이 발사되고는 영화가 끝나고 만다. 화려한 형식미의 영화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장면도 '비위 상한다'는 한국 심의위원들의 원초적 감정을 뛰어 넘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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