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게으름에 대한 찬양

입력 1999-07-21 14:11:00

폭염이 시작됐다. 더위에 특히 약한 나에게 있어 여름은 또한 독서하기에 가장 적당한 계절이다. 근래 내가 읽은 책 중 한 권인 '게으름에 대한 찬양'(버트란트 러셀)은 15가지의 소제목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하드한 에세이인데 그중 표제글인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적절한 시의성과 교양을 동시에 갖춘 퍽 재미있는 글이었다. 그 글의 요지를 나의 단상과 함께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예전 잉여생산의 독촉을 위해 영주나 사제가 이용한 가장 나은 방법은 부당한 폭력이나 강제가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는 윤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이데올로기는 강제력에 쓰이는 비용보다 더 저렴하였고 또한 윤리적이었다. 이러한 근로의 미덕에 대한 잘못된 강요는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이 놀라우리만큼 감축된 현재에 와서도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생산력을 위해서는 현재의 여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IMF체제라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현실에 적용해 본다면, 이러한 이야기는 더없이 선명한 장면으로 다가온다. IMF의 탈출구로 한국 사용자측이 선택한 주된 방법은 잉여노동의 퇴출이었다. 그들은 생산현장의 과다한 고용으로 인한 저효율이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잉여노동의 퇴출을 부추겼다. 이러한 능률만능주의는 결국 노동자의 일부분은 과로(過勞)의 현장으로, 나머지 버림받은 일부분은 참혹한 굶주림의 현장으로 내몰고 마는 결과를 도출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몇몇 진보단체와 노동자측이 대안으로 제시한 '노동시간 단축과 저임금의 감수'를 러셀은 정당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은 결국 한국사회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그 원인을 러셀의 표현을 빌어 설명하자면 여전히 사용자들은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부지런함의 미덕과 그 강요를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근면한 자들이기 때문인 것이다.

'예전부터 8시간을 일해 왔고, 앞으로도 그 시간은 지켜져야 하며, 이 성스러운 8시간 동안 노동자들은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한다'란 이 딱딱하게 응고된 사고로부터 그들은 좀처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셀의 주장대로 이 사회가 지속된다면 결국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생산시간의 비약적인 단축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노동시간의 단축과 그로인한 여가시간의 증가는 결코 노동자에겐 꿈도 꿀 수 없는 신기루가 되는 셈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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